▲ 안상영 부산시장이 2년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성추문 의혹에 다시금 시달리고 있다. | ||
부산지역 여성·시민·사회단체 등 33개 연합체로 구성된 ‘안상영 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활동에 들어갔다. 대책위는 이 문제와 관련해 검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등 범시민 차원에서 공세를 취할 태세다.
이밖에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시 지부도 현직 시장이 관련된 사안인 만큼 노조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신중하고 정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특히 시 지부는 지난 7월6일 시청 공무원 1천명을 상대로 자체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9.5%가 ‘안 시장 성폭력의혹 사건’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부산지역 일부 시민단체들은 안 시장의 성폭력 의혹 공론화는 아시안게임을 앞둔 부산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대책위와 상반된 입장을 보여 이 지역 여론이 양분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최근 이 사건과 관련된 두 건의 문건을 입수했다. 하나는 A4용지 두 장으로 된 익명의 진정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지역 정보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A4용지 1장 분량의 보고서이다.
진정서는 사건 발생 1년 뒤인 지난해 4월쯤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건 내용은 지방선거 때 한이헌 후보측에서 제기한 ‘안 시장 성폭력 의혹’과 대동소이하다. 당시 한 후보측은 안 시장이 지난 2000년 3월4일부터 11일까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을 순방하는 도중 통역사로 수행했던 부산시청 소속의 여직원을 성폭행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서는 안 시장의 유럽방문 시기, 수행원 규모 등 사건의 전말을 비교적 자세히 적고 있다. ‘부산시장 안상영의 △△사건에 대하여’로 시작하는 이 문건은 일단 작성주체가 불분명하다. 다만 여직원과 남편 이외의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에는 “본인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은 시장을 찾아가 분노를 느끼고 반드시 고발하여 처벌받게 하겠다고 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문건에는 또 사건 발생 직후 여직원 남편이 부산의 김 아무개 변호사를 찾아가 법적 대응을 검토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남편은 변호사를 찾아가 법적대응에 대해 상담을 했다… 그러나 돌아와 밤잠을 못자고 생각해보니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얼굴을 들고 학생들을 볼 자신이 없다”고 문건에 적시돼 있다. 문제의 여직원 남편은 부산의 한 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문건에는 또 안 시장측이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해 여직원측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안 시장은 2000년 4월24일 남 아무개 부시장을 통하여 L호텔에서 남편을 만나 △억원을 건네주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고 돼 있다. 문건 말미에는 “법의 심판을 바랍니다”라는 수사당국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이 진정서는 지난해 3∼4월께부터 부산지역 정가, 정보기관, 언론사 등에 암암리에 유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정가의 한 관계자는 “투서 형식의 이 문건은 검찰에도 전달돼 내사까지 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검찰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부산지검의 고위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 명으로 떠도는 진정서(왼쪽)와 정보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 | ||
아울러 남편이 돈을 받았다는 2000년 4월24일 다음날 여직원은 사표를 제출했으며 이틀 후인 27일 남편의 아파트에 설정된 은행 근저당(채권최고액 4천6백만원)이 해지된 사실이 밝혀져 진정서의 내용에 무게가 더해진다. 물론 성폭행 여부와 합의를 위한 금품수수와 제공자 등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 부산시지부 한석우 본부장은 “계좌추적 등 검찰의 수사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밝혀질 수 있는 사안”이라며 “의혹은 사실로 추정되며 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물론 안 시장측은 진정서에 대해 “안 시장을 음해하기 위한 일부 세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 시장의 법적 대리인인 최거훈 변호사는 “안 시장도 지난해 봄 지역 언론사를 통해 문제의 괴문서를 입수해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문건이 익명으로 돼 있어 결국 투서자를 밝히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또 답변서를 통해 “검찰에의 진정 및 루머는 피해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안 시장을 음해하고자 적당히 말을 꾸며내어 제기하고 유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진정서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수행직원과 합의금을 줬다는 모기업체 대표 L씨는 실체가 없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폭행 실체에 대해서도 “성폭행 행위의 구체적인 시각, 범행지역, 호텔명, 호실, 성폭행에 이르는 과정, 행위태양, 성폭행 후의 상황 등이 아주 리얼하게 제시돼야 하는 것”이라며 “실체가 전혀 없는 것이며 남편의 착오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일축했다.
정보기관이 내부보고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문건은 안 시장의 유럽방문 일정과 목적, 동행자, 사건 내용, 합의 여부, 금품제공자 등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피해여성의 신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따르면 안 시장 일행의 방문지는 파리, 니스, 모나코, 런던이며, 목적은 르노자동차, 삼성자동차 인수, 북항대교민자유치 및 관광실태 등이라고 적고 있다. ‘동행자’ 항목에서는 안 시장 부부, 남 아무개 센텀시티 대표(당시 정무부시장), 이 아무개 국제협력과 통역사(문제의 여직원), 마 아무개 아시안게임 준비단장(당시 국제협력과장), VTR기사, H일보 P기자, C방송 P기자 등을 적시했다.
▲ 지난 6월 18일 한나라당 광역단체장 당선자대회에 참석한 안상영 시장(왼쪽서 두번째). | ||
통상적으로 정보기관원이 작성하는 보고서는 시중에 나도는 첩보수준의 내용을 인지, 사실관계 확인절차 없이 보고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제의 보고서도 내용의 진실성에 있어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방문일정이나 목적, 동행자, 피해여성의 주소 등 기초적 사실관계는 정확한 것으로 확인돼 문건 작성자가 사건의 기본적인 윤곽을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로 추정되는 이 문건과 관련해 안 시장측은 “시중 루머를 근거로 작성한 만큼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정가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당시 우리도 관계기관으로부터 같은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안 시장 성폭력 의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략적으로 이용됐다는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는 부산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알려진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시장은 선거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적극적인 자기방어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직원 남편이 법률자문을 구한 김 변호사를 찾아가 “잘 부탁한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물론 이에 대해 안 시장측은 “단순 루머를 기관에 수사의뢰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며 김 변호사를 만난 것은 시정과 관련한 협의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남편과 법적대응을 검토했던 김 변호사는 성폭행 사건으로 안 시장을 만났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진실은 하나다.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성폭행 의혹은 미궁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검찰도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부산지검 선우영 제1차장은 “문제의 여성이 검찰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아 수사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토로했다.그러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국내 제2의 도시이자 인구 4백만의 부산 시정을 담당하는 안상영 시장. 그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상대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눌러 당선됐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2년 전의 일로 민선 3기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장대로 부산아시안게임을 총괄지휘하고 있는 안 시장인 만큼 검찰의 발빠른 수사결과를 기대해 본다.
백승구 기자 eag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