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 아무개 씨가 9월 24일 인천시 남구 남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에는 차남 정 씨가 구속된 지 하루 만인 지난 9월 23일 강원 정선군 신동읍의 한 야산에서 어머니 김 씨의 시신이 발견되며 수사에 급물살을 타게 됐다. 차남의 부인인 김 아무개 씨(여·29)가 시어머니의 시신 유기 장소를 경찰에 알린 것이다. 김 씨는 경찰에서 “지난달 14일 이혼 얘기가 오가던 남편으로부터 화해 여행을 가자는 연락이 와 따라 나섰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시신을 넣은 것으로 보이는 가방을 남편이 유기한 것 같아 경찰에 알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수면제를 먹고 차에서 자고 있었다”며 살해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되자 차남 정 씨는 경찰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내가 형의 시신을 찾아주겠다”며 경찰과 함께 경북 울진군 소광리의 한 야산을 직접 찾아 자신이 유기한 형의 시신을 찾아냈다. 발견 당시 형의 사체는 3등분으로 토막난 채 비닐에 싸여 약 20㎝ 깊이의 땅속에 매장돼 있었다.
모자 실종 전단지 일부
실제로 어머니 김 씨와 차남 부부간에는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와 거래를 했던 한 부동산업자는 “2011년 차남 정 씨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김 씨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차남이 데리고 온 부인 김 씨가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결국 둘을 결혼시키면서 김 씨는 차남 부부에게 1억 원짜리 빌라 방을 하나 사주며 분가시켰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속을 썩인 아들을 내보내니 속시원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도 고부간의 갈등은 계속됐다고 한다. 어머니 김 씨의 집 인근에 사는 한 동네주민은 “김 씨가 차남 부부에게 사준 집은 김 씨의 빌라와 건널목을 하나 사이에 둔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다 김 씨는 집에만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집 근처를 자주 돌아다녔다. 성격도 괄괄하니 급하고 불같았다. 그러니 매일 차남 집에 찾아가 며느리에게 생활 전반에 대해 이것저것 간섭하지 않았겠느냐. 고부간에 갈등이 심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범으로 지목된 김 씨가 목 매 숨진 채 발견되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도박으로 집까지 날리고 조그만 집으로 이사까지 갔지만 차남 정 씨는 금전적 문제로 어머니의 집을 자주 찾았다. 도박 빚 8000만 원이 있어 어머니에게 5000만 원에서 1억 원의 돈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 집 옆 건물의 주민들은 “김 씨가 빌라를 사서 들어온 지 5년 정도 됐지만, 친하게 지낸 이는 거의 없었다. 김 씨는 괜히 가족들 이야기가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를까봐 사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아, 차남 부부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면서도 “김 씨 집에서 차남과 김 씨가 싸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차남 정 씨 부부 사이도 별로 좋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인 김 씨가 남편 정 씨와 집안일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논현동 정 씨 자택의 한 주민은 “차남 정 씨는 평소에 예의도 바르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부인인 김 씨도 착해 보이는 인상에 말이 없었다”고 전하면서도 “직업이 없었던 주부 김 씨가 집에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의 매일 오전에 외출해 오후에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직장인인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끔 정 씨 부부 집에서 고성이 오가며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지난달 정 씨가 한 차례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이후에는 매일같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덧붙였다.
인천 모자 살인사건 피해자 김 씨 자택. 구윤성 인턴기자
그래서 가정생활에 염증을 느낀 정 씨가 도박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정 씨가 김 씨와 결혼한 이후부터 강원랜드에 출입하며 도박을 했기 때문이다.
차남 정 씨의 범행 사실을 자백 받은 경찰은 부인 김 씨 역시 모자를 살해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하고 지난 25일부터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한 차례 조사를 마친 경찰은 다음날인 26일 김 씨에게 오후 1시 30분까지 경찰서에 출석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 씨는 경찰서에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경찰이 오후 2시 20분 차남의 집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보니 김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긴 채 현관문 천장 배관에 스스로 목을 매고 숨져 있었다.
어머니 김 씨와 큰형 정 씨는 살해당했다. 부인 김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차남 정 씨의 입에 이번 사건의 진실규명이 달려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