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그룹들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당장 시장에서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시선이 집중된 대기업은 동부, 두산, 한진, 현대, 코오롱그룹 등이다. 이들 기업은 재계서열 10~20위로 동양(47위)보다 그룹 규모가 크다. 따라서 자체적인 재무구조 개선 노력과 함께 금융당국의 사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양그룹에 이어 다른 대기업집단들에서도 ‘유동성 위기’가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구윤성 인턴기자
이와 관련, 한국기업평가는 보고서에서 “동부그룹의 비금융부문 주요 계열사들은 실적 저하와 저조한 수익성, 과도한 금융비용 부담, 영업 현금창출 규모를 웃도는 투자에 따른 차입규모 증가 등의 요인이 악순환하면서 과중한 재무 부담을 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나이스신용평가도 지난 9월 동부그룹에 대해 “비금융 신규 사업으로 인한 채무부담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두산그룹은 주력 계열사의 인수·합병(M&A) 등에 따른 투자가 그룹 차원의 재무 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최근 10년여 동안 12건에 이르는 M&A를 통해 계열사 수를 지난해 말 기준으로 25개(자산총액 30조 7000억 원)로 늘렸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366%에서 6월 말 371%로 상승했다. 한기평은 “그룹의 사업포트폴리오가 경기민감도가 높은 중공업에 집중된 구조임을 고려할 때 차입금 감축을 통한 그룹 차원의 재무구조개선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진그룹은 주력인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업황 침체로 영업실적이 떨어지는 가운데 항공기, 선박 투자 규모가 늘어나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 부담이 크게 가중된 상태로 평가됐다.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이 1088%, 차입금의존도가 66%에 달하는 데다 기종 교체 등으로 대규모 추가 차입이 불가피하다. 부채비율 775%, 차입금의존도 77%인 한진해운도 영업적자에 자본마저 까먹고 있다. 최근 한진그룹은 (주)한진칼 설립을 통한 지주사 체제 전환을 도모하고 있는데, 순환출자 해소 등 그룹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일부 주력 계열사의 재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현대그룹에서는 한진해운과 마찬가지로 해운업 불황으로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895%에 달한다.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상환하려고 금융당국의 회사채 차환발행 지원을 신청했을 정도다. 코오롱그룹은 건설업이 주력인 코오롱글로벌의 금융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가운데 공사 미수금이 쌓이는 게 문제로 거론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들 그룹들은 저마다 취약점을 갖고 있어서 언제든 악재가 터져 나올 수 있는 위험군으로 분류돼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해당 기업들은 시장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동부그룹 측은 “동부건설은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매각 등으로 연내 45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면 차입금을 막는 데 충분하다”며 “동부그룹은 동양그룹과 비교해 규모나 사업구조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가 삼성,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업계 전반의 문제라는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재벌닷컴은 최근 국내 30대 재벌의 부채 총액이 600조 원에 육박했고, 이중 절반가량이 5년 전보다 부채비율이 증가해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30대 재벌의 총 부채는 574조 9000억 원 규모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말(313조 8000억 원)보다 83.2%(261조 1000억 원)나 증가했다. 일부 우량 그룹을 제외하면 재무안정성이 대부분 악화됐다는 점이다.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28개 그룹의 부채비율은 113.7%에서 115.4%로 상승했다. 또 부채비율이 5년 전보다 높아져 재무안정성이 악화된 그룹이 14곳에 달했다. 심지어 부채가 자기자본의 2배가 넘는, 부채비율 200% 이상도 동양(1231.7%), 한진(437.3%), 현대(404.1%), 금호아시아나(265.0%), 동부(259.4%), STX(256.9%), 6곳이나 됐다.
재벌닷컴은 “재벌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부채가 급증했다”면서 “부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부채 폭탄’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