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전 총장은 가정부 이 씨가 증언한 내용을 모두 부인했지만 그 뒤 별다른 해명이나 반격을 하지 않아 여론은 점점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퇴임식이 끝난 후 직원들에게 손을 흔드는 채 전 총장.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퇴임식이 끝나자마자 채 전 총장 가족에게 비수가 날아들었다. 이날 오후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 씨(54) 집에서 가정부 겸 보모로 일했다던 이 아무개 씨(여·61)가 “(임 씨의) 아이 아빠는 채 전 총장이 맞다”는 충격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 씨의 주장에 대해 채 전 총장 측은 즉각 “엉뚱한 사람과 착각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무근의 의혹을 진실처럼 호도했다.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가정부 이 씨가 어떤 저의로 이런 폭로를 했는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주장의 신뢰성 여부를 단언하긴 어렵다”면서도 “이 씨의 주장 중 일부분 납득할 만한 정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 씨의 주장 중 유일하게 납득할 만한 내용이 한 부분 있다. 이 씨가 ‘채 전 총장이 지하철을 타고 오면 임 씨가 차로 마중 갔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채 전 총장은 운전을 못한다”고 말했다.
가정부 주장의 진의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채 전 총장을 잘 아는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이 씨가 ‘아이 아빠가 수사기획관 할 때 티비(TV)에 나오는 걸 보고 (채 전 총장의) 이름도 알게 됐다’고 주장한 대목에 대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법조계 인사는 이에 대해 “고령의 일반인인 이 씨가 ‘수사기획관’이란 직위를 알고 있다는 게 아무리 봐도 미심쩍다. TV에 잘 나오지 않는 직위일뿐더러 이 씨 본인도 TV에서 보고 수사기획관인 걸 알게 됐다고 하는데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때문에 이 씨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가정부 이 씨가 유일하게 제시한 근거인 ‘연하장’도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로는 미약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해당 연하장에는 2006년 12월, 채 군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가정부 이 씨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채 군을 키워준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TV조선>은 연하장에 적힌 글씨와 채 전 총장이 지난 6월 군부대를 방문해 남겼던 방명록 글씨를 비교하는 한편, 사설 감정원 두 곳에 필적 감정을 의뢰해 ‘동일인’이라는 결과를 얻은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일각에서는 “연하장이 혼외자 논란을 끝낼 결정적 물증”이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사설 감정원의 필적 감정만 갖고는 확실한 물증이 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치평론가 매일P&I 전계완 대표는 “만약 가족사진 정도라면 채 전 총장이 임 씨 가족의 일원인지 아닌지 다퉈볼 수 있는 여지를 주겠지만 사설감정원에 의뢰한 연하장 필적만으로는 확실한 물증으로 보기에 부족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필적뿐만 아니라 문서 원본을 갖고 ‘필압’을 함께 봐야 한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TV조선>이 사설 감정사에 의뢰한 연하장은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필적뿐만 아니라 어떻게 눌러 쓰는지 필압도 함께 본다. 더군다나 본인이 부인할 시 감정사 앞에서 직접 가로로 혹은 세로로 쓰게 하는 등 여러 가지 글을 쓰게 한다. 그 후 감정을 해야 확실한 물증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가정부의 폭로 시점도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채 전 총장이 가족까지 대동하고 퇴임식을 치른 바로 직후 그것을 극적으로 뒤집는 가정부의 증언이 나오자 국민들도 충격을 받았다. 가정부의 폭로 시점에 저의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역시 그 뒤에는 ‘돈’ 문제가 관련돼 있다는 관측이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가정부 이 씨가 <TV조선> 측으로 스스로 찾아갔다는 말도 나온다.
가정부 이 씨는 “임 씨에게 6500만 원을 빌려주고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임 씨와의 채무 관계를 밝힌 바 있다. 식당 허드렛일부터 사창가에 밥 차려 주는 일까지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 씨는 임 씨에게 빌려준 돈이 사실상 ‘전 재산’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돈을 제때 갚지 않은 임 씨에 대한 ‘배신감’이 사안을 폭로하게 된 주요 열쇠가 된 셈이다.
채 전 총장과 관련한 폭로를 마친 가정부 이 씨가 “몇 년 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한이 풀렸다”는 소회를 밝힌 대목도 채무 관계에서 피해자가 보이는 행동과 흡사하다는 게 수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를 두고 한 수사전문 경찰 관계자는 “채무 관계가 틀어질 경우 가해자에게 복수하려는 의도에서 허언을 하는 케이스가 많다”며 “가정부 이 씨의 주장을 100%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임 씨가 실제로 이 씨의 돈을 빌려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임 씨를 알고 있는 인물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 씨와 과거 함께 일을 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임 씨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다. 이번 사안을 보고 ‘옛 버릇 못 고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임 씨는 이 씨와의 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건장한 남성들을 동원해 이 씨를 협박했다는 증언도 있어 임 씨의 뒤를 누군가가 봐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 씨는 “돈을 돌려받고자 했으나 오히려 건장한 남성들에게 ‘채 총장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 씨에 따르면 당시는 채 전 총장이 검찰수장에 임명된 이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가정부 이 씨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는 쪽에 여론에 모아지고 있다. 이 씨의 주장 대부분이 굉장히 상세하기 때문이다. 거짓 주장이라고 하기에는 정황 설명이 너무나도 구체적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제3자로서의 진술이기에 당사자보다는 신빙성이 높다고 봐야 하고 무엇보다 이 씨의 증언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임 씨와의 채무 관계 때문에 증언 내용이 상당 부분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허위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 씨가 증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채 전 총장의 옷차림, 채 전 총장이 임 씨 집에 들렀을 때의 분위기 등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씨는 “채 전 총장은 거의 와이셔츠 차림이었고, 내가 그의 와이셔츠를 직접 빨고 다려줬다”며 “채 전 총장이 오는 날에는 임 여인이 한나절씩 마사지를 받고 오고 청소를 시켜놓고 청소를 다시 하라고 하기도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밖에도 “채 전 총장이 안방에서 아이에게 무등을 태워주며 놀다가 떠났다”, “(채 군이) 5살 무렵 영어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채 전 총장이 직접 영어를 가르쳐주는 모습도 봤다”며 채 전 총장이 임 씨 집에서 채 군을 만났을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4년 7개월가량 일을 한 보모가 아니라면 이 같은 상황을 쉽게 지어낼 수 없다는 추측이다.
특히 채 전 총장은 이 씨가 증언한 내용을 모두 부인했지만 그 뒤 별다른 해명이나 반격을 하지 않아 여론은 점점 가정부 주장이 맞을 것이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채 전 총장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 최악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미확인 소문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더 이상 검찰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채 전 총장의 ‘개인적인 문제’로 해결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채 전 총장을 믿었던 일선 검사들 가운데 일부는 “진짜 헷갈린다”며 충격적인 반전에 허탈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전 검찰총수의 혼외아들 사건은 당사자 채동욱 전 총장의 ‘최후 발언’에 따라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날 전망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