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퇴폐성을 다룬 이런 종류의 기사는 김일성 김정일 시절에도 ‘기쁨조’ 얘기 속에 늘 들어있었다.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북한 최고 권력자의 가수 출신 아내를 직접 겨냥한 것이어서 ‘기쁨조’ 얘기보다 충격적이지만 정황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왕재산예술단이 2009년에 이미 해체됐다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문제는 이 보도 다음날인 21일 북한이 취한 태도다. ‘우리의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극악한 도발’이라는 반응은 상투적이라고 치더라도 불과 4일 앞으로 다가왔던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돌연 중단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으로, 극한적인 용어로 다시 비난하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이산가족 상봉 협상 재개 등으로 풀려가는가 싶던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외국 신문에 난 기사를 국내 언론들이 전재 보도를 한 것이므로 북한이 이 기사를 남북관계에 연계시킬 이유는 없다. 아무리 폐쇄 사회라지만 자유체제의 언론의 속성에 대해서 모를 리도 없는 그들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사의 출처를 남한의 정보당국으로 보기 때문일 듯하다.
이 기사의 파장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일 대북단체인 블루유니언 회원들이 이 기사를 소재로 만든 팸플릿을 풍선에 실어 북한으로 보냈다. 팸플릿은 ‘리설주 사모님께서 홀딱 벗고 추잡한 영상을 찍어 외화벌이를 하셨다니!’란 제목 아래 정체불명의 남녀 정사 사진을 리설주의 포르노 사진인 듯이 싣고 있다.
이것은 언론 보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선정적으로 각색까지 해서 북한에다 보내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차원을 넘는 일이고, 북측 당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북한 뉴스를 다루는 인터넷매체 <뉴포커스>는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평양이 진심으로 화낼 만한 거짓’이라고 평가했지만 김정은이 최고 권력에 오른 이후 이런 류의 스캔들은 처음 겪는 일일 듯하다. 그의 충동적 반응은 군부 강경파에 업힌 갓 30세, 철없는 권력자의 미숙성일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그가 알아야 할 일은 그의 한 번 화풀이로 일천만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