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오너 부부 현재현 회장, 이혜경 부회장 간 알력이 그룹 붕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양그룹 본사. 구윤성 인턴기자
지난 8일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는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진,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과 관련해 입장 자료를 내고 “그룹의 전반적 구조조정 계획과 실행은 현재현 회장, 그리고 전략기획본부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은 결코 그룹 실세가 아니며, 자산 매각이나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 등 주요 의사결정에 간여하지 않았다는 게 자료의 골자였다.
이보다 앞서 동양그룹이 5개 계열사들에 대해 법정관리 신청을 한 직후인 이달 초부터 그동안 그룹의 전반적 구조조정은 물론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이 그룹 내 숨은 실세인 김 대표에 의해 진행됐다는 얘기가 동양그룹 안팎에 파다했다. 김 대표는 또한 동양매직 매각 지연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의 경우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기획본부에서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등, 현재 동양 사태 책임의 강력한 한 축으로 지목받던 상황이었다.
현재현 회장
김 대표는 지난 2008년 우연한 기회에 이혜경 부회장에 의해 전격 발탁되면서 동양그룹과 연을 맺기 시작한 인물이다. 변변한 ‘스펙’이 없는 그는 이 부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30대의 젊은 나이부터 그룹의 여러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으며 승승장구해 왔다. 2008년은 이 부회장이 그룹의 최고디자인경영자(CDO)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룹 경영에 발을 들여 놓은 때다. 동생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 달리 오랫동안 내조에만 신경 써 왔던 이 부회장이 경영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한 것은 ‘아버지 회사를 내가 다시 살려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인 현 회장은 ‘백년손님’이라는 사위의 한계에서 벗어나 동양그룹을 온전히 자신의 회사로 만들려고 했다. 금융업에 진출해 이를 그룹의 핵심 축으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현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빚을 내 가면서까지 자신의 지분 늘리기에도 적극 나섰다. 급기야 현 회장은 지난 2001년 그룹의 모기업이자 지배구조의 핵심인 동양메이저(현 ㈜동양)의 지분에서 이 부회장을 넘어서며 최대주주에 등극할 수 있었다.
이 부회장은 결국 점점 어려워지는 회사 살리기라는 명분을 갖고 회사로 직접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룹 내부에선 현 회장 라인과 이 부회장 라인이 자연스레 생기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동양증권노동조합 관계자는 “그룹 내 파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 참여한 2008년부터이며, 2010년 김철 대표가 그룹 내 경영에 본격 관여하면서 파벌 싸움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혜경 부회장
심지어 후계구도와 관련해서도 양측은 대립각을 세워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 측은 장녀인 현정담 (주)동양 상무를, 이 부회장 측은 장남인 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를 후계자로 밀고 있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누나인 현정담 상무가 그동안 승진 속도 등에서 동생인 현승담 대표를 다소 앞서 왔으나, 동생인 현 대표가 지난 6월 김철 대표와 함께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 자리에 먼저 오르면서 후계구도에는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양측은 두 남매보다 더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1일 전략기획본부 김봉수 상무가 전격 해임된 것도 김철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김 상무는 현정담 상무의 남편으로, 현 회장의 맏사위가 된다.
현승담 대표와는 호형호제하며 동양네트웍스에서 ‘경영 멘토’ 역할까지 자처하는 사이라 알려진 김 대표는, 현 상무와는 줄곧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김철 대표가 동양네트웍스를 통해 소규모 정보기술(IT)기업 인수를 시도할 때 이를 무산시킨 사람이 현 상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측은 보이지 않는 파워 게임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7일부터 진행될 금융당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현재현 회장에 더해 이혜경 부회장과 김철 대표에 대해서도 추가로 증인 출석을 요구한 상태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