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윤석민. 일요신문 DB
그러나 윤석민은 남모르는 시련이 많았다고 토로한다.
“2009년 WBC대회 이후 저도 모르게 거만해졌던 것 같아요. 메이저리그에서 날고 기는 타자들이 제 공에 헛스윙하는 걸 보면서 자아도취가 됐나 봐요. 2010 시즌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꼬이기만 하더라고요. 당시 로페즈, 양현종이 5연승을 만들어놨는데 제가 나가서 말아 먹곤 했어요. 그러다 팀이 역전패 당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오른 손으로 벽을 때리게 됐죠. 제 자신에게 굉장히 화가 났어요. 이렇게 던질 거라면 차라리 야구를 하지 말자는 생각에 벽을 친 것 같아요. 그 후 팀이 16연패를 했죠. 제 야구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그게 윤석민의 최악이 아니었다.
“그 후로 손에 깁스를 하고 집에서 쉬면서 몸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팀의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고요. 제가 마냥 편히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깁스 풀자마자 열심히 재활을 했고, 일주일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습니다. 손가락 감각이 무딘 상태다 보니 제구가 잘 안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홍성흔 선배님의 손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히게 됐죠. 홍성흔 선배님은 사실상 시즌아웃이 되고 말았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9일 후 다시 9회 마무리로 올라갔다가 이번에는 조성환 선배님의 헬맷으로 공이 향했고, 선배님은 그 즉시 병원으로 이송이 됐어요. 그 순간 ‘죽고싶다’는 생각 외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후 윤석민은 조범현 당시 KIA타이거즈 감독의 배려에 의해 팀에서 나와 두문불출했다. 두 선배의 야구인생을 망쳐놨다는 자책감과 팀의 에이스에 걸맞지 않는 실력을 보이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생각에 큰 고통을 느끼며 지냈다. 그때 다시 손을 내민 사람이 조범현 감독이었다.
“감독님이 당시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으셨는데, 저한테 같이 가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실력도 안 되는데 어떻게 대표팀에 들어가겠냐’고 대답했더니 일단 몸부터 만들고 있으라고 하셔서 조용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 야구선수이고, 야구로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던 셈이죠. 그래서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했는데 운 좋게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마음의 빚, 짐들을 조금은 덜 수 있었습니다.”
야구로 생긴 오해와 루머들은 야구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진리를 터득한 셈이다.
“만약 제가 아 시안게임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변했을지 몰라요. 도망가지 않고 다시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에 FA도 되고, 미국 진출도 모색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당시 절 이끌어 주셨던 조범현 감독님을 잊지 못하는 것이겠죠.”
앞으로 윤석민한테 또 어떤 시련이 닥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전의 시련보다 더 힘든 상황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경험과 지혜가 있다. 그래서 이전의 아픔들이 지금은 결코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이다.(윤석민 인터뷰 64페이지 참조)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