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조석래 회장 ‘금고지기’로 알려진 고 아무개 상무를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보고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세청 고발장에 따르면 효성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외사업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1조 원대의 분식회계를 하고, 이 과정에서 거액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조 회장 일가가 1990년대부터 1000억 원대 차명재산을 관리하면서 양도세와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일단 검찰은 이러한 탈세 의혹을 빠른 시일 내에 규명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고위 인사는 “국세청으로부터 자료를 다 받아 왔기 때문에 수사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면서 “탈세 수사는 몸 풀기 정도로 보면 되고 횡령, 비자금 의혹 등이 이번 수사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CJ그룹 수사와 마찬가지로 탈세뿐 아니라 총수 일가 비자금에 대해서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발언이다. 검찰은 과거 5년여 수집해 쌓아놨던 효성 관련 자료들도 캐비닛에서 꺼내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1일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던 수사팀은 현재 고 아무개 상무에 대한 수사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도 효성 수사의 성패는 고 상무 ‘입’에 달렸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고 상무는 조 회장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인물이다. 고 상무는 2001년 임원으로 승진한 뒤 지금까지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효성그룹의 한 직원은 “고 상무가 조 회장 최측근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 상무는 현재 출국금지 상태다.
고 상무가 이번 수사의 ‘키맨’으로 떠오른 것은 그가 보유하고 있던 USB(컴퓨터 이동형 저장장치) 때문이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면서 발견한 이 USB엔 효성의 탈세,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수법 등이 저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국세청으로부터 이 USB를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한창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작성된 문건의 양식을 보면 조 회장에게 보고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비자금 내역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증거 자료”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CJ를 수사할 당시 이재현 회장의 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진 신 아무개 부사장을 통해 탈세뿐 아니라 비자금 조성, 로비 혐의에 대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 상무 수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검찰에 따르면 고 상무 USB엔 비자금 용처가 포함돼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수사팀은 고 상무를 소환조사하면서 비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추궁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검찰은 앞으로 고 상무를 서너 차례 더 불러 이 부분을 파헤칠 예정이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조 회장 일가 소환을 앞두고 고 상무가 진술을 해준다면 수사는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고 상무는 지난 정권에서 이뤄진 효성 수사 때도 핵심 인물로 거론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2월 검찰은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효성물산이 일본 현지법인을 통해 200억~3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제보와 관련 회계자료를 넘겨받고 수사에 착수했었다. 당시 검찰은 “효성그룹의 자금 흐름이 의심스럽다”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통보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던 터였다.
그러나 검찰은 1년 6개월 만인 2009년 9월 효성그룹 임직원 두 명을 불구속기소하며 효성그룹에 대한 수사 종결을 선언했다.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해외 법인을 통한 재산 해외유출 의혹 등은 전혀 규명되지 않았다. 당시 고 상무 역시 수사 대상에 오르내렸으나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당시 야당에서는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을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 회장 조카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의 딸 수연 씨와 부부다.
검찰이 5년 전과는 다르게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효성 수사를 진행하자 법조계 주변과 정치권에서는 과거 부실수사에 대해서도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2009년 효성 총수 일가의 차명재산 보유, 해외 부동산 구입 의혹, 군납 업체를 통한 납품 비리 의혹 등이 제기됐었다”며 부실수사 의혹을 꺼냈다.
검찰 내부에서도 과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석연치 않은 부분에 대해 외압 또는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앞서 언급한 검찰 고위 인사는 “당시 수사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수사는 탈세만 하는 게 아니라 효성과 관련된 모든 의혹이 대상이다. 효성이 지난 정부에서 부적절한 방법으로 검찰 수사를 피해갔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그 불똥은 이명박 정부 실세들에게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