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경제민주화를 전제한 경제활성화만이 진정한 경제활성화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동양그룹 사태는 금융 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가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나라 재벌그룹 구조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정치권에서 수없이 지적하고 경고했던 부분이다. 빨리 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경고음이 울린 것이다.”
―다른 기업도 동양 사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몇 개의 기업을 빼면 우리나라 재벌들은 모두 동양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종의 시한폭탄을 안고 계속 가는 것이다. 동양 사태는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고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정치권에서 순환출자·금산분리 문제 개선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중이다.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동태적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 심사 결과에 따라 약한 처벌에서부터 아주 강한 처벌까지 단계가 있을 수 있다. 대주주의 불법 전력이 생겼을 경우 일정 부분 경영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약한 단계라면 배임·횡령·탈세 등 중죄를 저질렀을 때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만드는 강한 처벌도 필요하다.”
―금산분리에 대한 구상은 어떤가.
“현재 국회에 기업집단의 금융회사가 비금융 계열사에 가질 수 있는 의결권을 현행 15%에서 단계적으로 5%까지 내리는 법안이 올라와 있는데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금융 회사와 비금융 회사를 아예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중간 단계로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중간지주회사를 만드는 일이다. 금산분리에 대한 재계의 우려와 호소가 워낙 강하니까 과도기적 단계로 중간지주회사를 두자는 것이다.”
―말 그대로 금산분리에 대한 재계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도 논의된 이슈였지만 변한 건 없었다. 재계는 현행법과 금융 감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웃음) 그런 재계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난 게 이번 동양 사태가 아닌가. 현행법과 금융 감독만으로 충분하다면 동양 사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 상태에서 제2의 동양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재계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결국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 동양 사태, 그리고 2년 전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교훈이다.”
―전경련 등 재계 일각에서는 ‘경영권을 제한하게 되면 삼성·현대와 같은 기업도 외국의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것도 일종의 협박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외국의 적대적 M&A가 된 사례가 있나. 없다. 재계가 주장하는 경영권 위협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가 주장하는 대로 금산분리 체제로 가면 경영권은 강화된다. 소버린 사태를 겪을 만큼 경영권이 취약했던 SK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후 경영권이 공고해졌다. 재계가 국민 정서에 호소해 일어나지 않을 일로 협박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치권에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경제민주화는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아마도 재벌 장학생들이 아닐까. 재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채 경제활성화를 이뤄냈다고 가정해 보자.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를 볼까.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면 제2의 동양 사태가 나고 결국 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 이런 활성화를 원하는 것인가. 경제민주화란 경제활성화 이후 그 열매를 정당한 사람이 가져가게 만드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없는 경제활성화는 누군가 열매를 독식할 뿐이다.”
2007년 6월 박근혜 캠프 대변인 당시 ‘다스’ 관련 의혹에 대한 규명을 촉구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당연하다. 경제민주화를 포기한다고 해서 경제활성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둘은 양자택일의 개념이 아니라 같이 가야만 한다. 굳이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경제민주화를 전제한 경제활성화여야 진정한 활성화가 되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이었다. 당시 정부는 금융 규제 철폐, 대기업 육성을 통한 낙수효과, 비즈니스 프렌들리 등을 표방했다.
“나는 그 당시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재벌을 부당하게 옥죄거나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재벌 편만 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재벌이든 서민이든 지킬 건 지키고 가져갈 건 가져가야 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지나치게 재벌 편의를 봐준 측면이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18대 국회에서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법인세를 낮춰주는 부분에서도 반대를 했다. 당시 새누리당 다수가 재벌 논리에 의해 따라간 부분은 있었다. 잘못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었다. 지금 새누리당 분위기는 그 전과 달라졌나.
“(웃음) 솔직히 별로 안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중심으로 당내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도 지금도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정권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여야 합의도 중요하다. 민주당은 법인세 인상, 출자총액제한제도(기업그룹집단이 자산의 일정범위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 계열분리명령과 같은 강한 규제책도 거론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 제도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부분에 논란이 있기 때문에 예전 제도를 그대로 부활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이미 여야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공감대가 있다지만 진도는 더디다.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200명은 국회에 올라와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찬성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의 멤버 가운데 재벌 편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중에 편파적인 사람들이 있다. 법안 통과에 있어 첫 번째 관문부터 편파적이니 진행이 안 되는 것이다.”
―원외에서 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에 있어야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혹시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하고 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나라와 당을 위해서 어떤 자리든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늘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당과 나라를 위한 일에 몸을 사려 본 적이 없다. 가능성과 유·불리를 떠나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다.”
인터뷰를 끝낸 이혜훈 최고위원이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분들의 실명을 거론해 주세요.”
바로 제19대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위원으로 활동 중인 새누리당 박민식·강석훈·김용태·김종훈 의원, 민주당 강기정·김기식·민병두·이상직 의원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에게 이번 정기국회 경제민주화 관련법 통과 여부가 달렸다는 간절함이기도 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