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팀장(왼쪽)과 이진한 차장(오른쪽)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놓고 의견이 갈리면서 사이가 벌어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윤 지청장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이진한 중앙지검 2차장을 보고라인인 수사책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또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기 전인 지난 15일 밤 조영곤 지검장 자택에 찾아가 수사 필요성과 향후 수사계획을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고 설명했는데 이 자리에서 조 지검장이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기소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조 지검장의 태도를 ‘외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윤 지청장은 국감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많아 수사가 힘들었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며 법무부 장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일선 검사들은 특수통 검사와 공안통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자라온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공안통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보고라인에 있는 상급자와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이 과정을 ‘토론’이라고 여긴다. 토론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인 수사 방향이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에 반해 특수통 검사는 수사 내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사건을 직접 맡아 진행하는 주임검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임검사가 사건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가장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지휘책임자는 후배 검사가 ‘이러이러한 사건을 수사 하겠습니다. 이런 강제 수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외압을 차단하고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4일 이진한 차장(오른쪽)이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왼쪽은 윤석열 팀장. 일요신문DB
윤 지청장은 “수사팀 검사들은 트위터 글을 보고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상당히 분노했다”며 “(15일 오후) 지검장님 댁에 가서 보고 드렸을 때 ‘정말 잘됐다. 이거 수사하자’라고 하거나 여러 가지 검토할 것이 있다면 신병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나 확보할 수 있는 증거부터 수사에 착수하고 보강할 것은 보강하라고 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윤 지청장이 특별수사팀 직속상관인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50)을 수사 총괄책임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 배경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진한 차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역임한 공안통이다. 특별수사팀 발족 당시 검찰은 윤석열 지청장을 특별수사팀장으로, 이진한 차장을 수사 총괄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기록돼 있다.
선거개입 사건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공안수사를 총괄하는 2차장 산하에 특별수사팀을 두되 좀 더 철저한 수사를 위해 특수통 검사를 팀장에 앉힌 것이다.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특별수사 체제 개편을 고민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54)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별수사팀 초기 윤 지청장은 이진한 차장에게 수사 현안과 진행 상황을 직접 보고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이 차장이 윤 지청장보다 선배이지만 나이는 윤 지청장이 많다. 이 같은 이유로 이 차장은 중요사안이 아닌 일상적인 보고를 특별수사팀 부팀장인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45)에게 맡겼다. 일종의 배려였다.
그러나 이 차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차장-법무부-청와대 등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특별수사팀과 이진한 차장의 관계가 틀어졌다. 수사팀 주변에서는 이진한 차장이 수사팀으로부터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흘러나왔다.
원 전 원장 등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국정원 관련 사건의 잔여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이진한 차장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진한 차장은 국정원 선거·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특별수사팀을 카메라 앞에 남겨둔 채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언론이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을 퍼부을 때 자신은 밝히고 싶은 의견이 없다는 표시였다.
한편 공안통이나 특수통이 아닌 강력통으로 분류되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특별수사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포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본인이 검사 생활하는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조 지검장은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료 스타일의 검사다.
결국 항명 사태는 공안통-특수통 간의 갈등과 이를 추스를 수 없었던 조 지검장 등이 만들어낸 검찰 역사상 최대 비극인 셈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은 어찌 보면 현 정부 청와대를 향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며 “이처럼 중차대한 사건 수사에 섞일 수 없는 두 부류를 함께 모아놓는 바람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