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61·사법연수원 14기)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정되면서 검찰 내부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김 후보자는 검찰 내부에서 ‘쇠고집’ ‘원칙주의자’로 평가받아온 이른바 ‘강성’ 검사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검란(檢亂) 때 총장 권한대행을 맡으며 주목받았다. 당시 그는 단 두 달 만에 누더기가 된 검찰조직을 순식간에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군기반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는 ‘화합형’이라기보단 ‘강경주도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로 인해 검찰 내부에선 조직을 잘 통솔할 인물인지에 대해 의문을 보내는 눈초리도 있다. 10월 30일 인사청문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근하는 김 후보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석연찮은 이유로 낙마하면서 검찰 내부는 상당히 휘청거렸다. 특수통으로 명망이 높았던 채 전 총장이 ‘가시밭길’로 비견되는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하자 검찰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오랜만에 수사 전문가가 수장에 올라 일선 검사들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 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올해 초 채 전 총장의 청문회 당시 사석에서 만난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개혁까진 아니지만 채 총장이 오고 희망이 보인다. 눈치 안보고 수사할 수 있게 됐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검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들뜬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의 ‘사생활’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제3자의 의혹 제기만으로도 검찰총장이 옷을 벗을 수 있다’는 초유의 사례를 남기면서 검찰 내부도 상당히 술렁거렸다. 이에 더해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국정원사건’ 특별수사팀 팀장간의 갈등이 최근 국감에서 생중계되면서 검찰의 자중지란은 극에 달했다. 이런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김진태 전 대검 차장을 새로운 검찰 수장으로 선택했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는 검찰의 추락한 위상과 조직안정을 이뤄야 하는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도 맞춰야 하는 이율배반적 임무 앞에 서 있다. 과연 그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사실 김 후보자에 대한 법조계 평은 극과 극이다. 김 후보자의 위 기수 선배들은 “깍듯하고 예의바르다. 원리 원칙을 준수해 검찰 수장에 적합하다”며 김 후보자를 한껏 치켜세운 반면 후배 검사들은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모시게 됐다.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갔다”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도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김 후보자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군기반장’의 재등장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김 후보자가 총장대행 할 당시 김 후보자에게 결재받으러 들어가기 전에 청심환을 먹고 들어간 검사가 한둘이 아니다”라면서 “우스갯소리일 테지만 그만큼 대부분의 검사들이 김 후보자와의 면대면 보고를 기피했다. 일반적으로 고위급 선배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 않은가. 그만큼 김 후보자를 대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하다. 소통 부족이 김 후보자의 최대의 약점이다. 김 후보자가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무조건 ‘상명하복’ 식으로 밀어붙일 경우 과거의 어두운 검찰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말이 없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진 김 후보자의 지난 삶은 의외로 ‘다이내믹’하다. 검정고시 출신(경남 진주고 중퇴)인 김 후보자는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부산 소재의 한 절에 피신했다가 한동안 스님의 길을 걷기도 했다. 당시 김 후보자가 받은 법호는 ‘봉당’(鳳堂). 그는 이후 속세로 나와 한국은행에 입사했다가 주경야독 4년 만인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후 김 후보자는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대검 범정1담당관과 중수2과장, 대검 차장 등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치며 ‘특수통’ 검사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왔다는 평이다.
채 전 총장의 ‘수사기술자’,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는 못 미치지만 김 후보자도 ‘원칙주의자’, ‘독불장군’ 등으로 불리며 탁월한 수사 감각을 인정받아왔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일에 미친 사람처럼 수사만 하던 분이었다. 괜히 ‘워커홀릭’으로 불린 게 아니다. 그리고 (수사를) 잘하긴 정말 잘했다. 한 대기업 사건을 담당했을 때 김 후보자가 한국은행 출신이라서 그런지 회계장부를 샅샅이 보더라. 그걸 보며 내가 만약에 피의자 신분인 기업 측이었다면 오금이 저렸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회고했다. 김 후보자가 담당한 사건 이력은 실제로도 화려하다.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엄삼탁 전 병무청장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홍업 씨에 이르기까지 줄곧 거물급 인사들을 상대로 거침없는 수사를 해왔다. 19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00억 원을 준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김 검사님(김진태)이 원망스럽다”고 한 일화가 이를 대변해준다. 당시 수사 과정을 지켜봤다는 한 검찰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특징 중 하나가 표정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포커페이스’식 수사를 하는데 대기업 회장이 와도 김 후보자 앞에선 기가 죽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 이종현 기자
그렇다면 김 후보자에게 검찰개혁을 이뤄갈 만한 ‘묘안’이 있을까.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급 검사는 “김 후보자는 ‘벙커’다. 다들 대하기 어려워했다. 워낙에 김 후보자가 워커홀릭인 데다 밑에 사람들을 되게 쪼아대는 그런 스타일이다. 원칙주의자인 건 이미 유명한 얘기일 테고. 여하튼 김 후보자만큼 검찰개혁하고 어울리지 않는 인사는 없을 것”이라면서 “대검 차장으로 있을 때도 그랬고 (김 후보자가) 검찰 내에서 새로운 걸 추진하는 건 불가능하다. 업무의 일관성이 있으니 내부 불만은 적은 편이지만 너무 아랫사람을 억누르니까 소통하기도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이어 이 검사는 “내가 알기로 김 후보자는 원칙적인 명령을 하달하는 사람이지, 아랫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올라가는 게 없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검찰개혁을 하겠느냐”라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를 잘 안다는 법조계의 한 석학은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후보자가)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인 데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다. 수사할 때에는 이런 성향이 적합하지만, 검찰 수장의 자리에선 힘을 좀 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반면 김 후보자의 검찰 선배 대다수는 “김 후보자만큼 현재 검찰에 적합한 총장은 없다”는 상반된 평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전직 대검 차장 출신의 한 인사는 “김 후보자는 원리원칙적인 인물이라 국정원 사태 등 일련의 고비들을 잘 해결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직 법무부 장관 출신의 한 검찰 인사 역시 “요즘 검사들은 외형적이고 시끄러운데 김 후보자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 한번은 내가 ‘미스터 솔리타’(solita·나홀로)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그만큼 김 후보자는 사람을 옆에 잘 안두고 고독을 즐기는 타입이다. 남 눈치 안보고 신중한 결정을 하는 인물이라 여러모로 현 검찰을 지휘하는 데 적합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현재 법조계 초유의 관심사인 국정원 사건 수사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검찰 관계자 다수는 “집중 수사 안하고 원리원칙을 강조하며 국정원 사건을 속도감 있게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라고 하면 아랫사람들이 주눅이 들고 바짝 엎드리니까 윤석열 팀장과 같은 반발도 없을 것”이라며 “김 후보자 자체가 자기 주관이 뚜렷해 본인은 윗선 눈치를 안 본다고 자부할 테지만 결국 청와대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내놓으며 ‘원칙대로 수사했더니 이렇게 됐다’며 스스로 합리화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우려감을 내비쳤다.
김 후보자는 불가의 말씀을 담은 자신의 저서 <물속을 걸어가는 달>에서 “옛 선지식은 ‘나는 자네 수행에 대해 말해도 알고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라고 했다”고 전한다. 불법의 고매한 뜻을 담은 문구라고 하지만 문구 그대로를 보면 ‘내가 다 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총장은 검찰의 최고 선배인 만큼 자칫하면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독선에 치우치기 쉽다. 독선을 예방하는 첩경은 바로 소통에서 시작된다. 김 후보자가 후배들의 충언에 귀 기울이며 내부화합을 이뤄낼지 일단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