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이후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원희룡 전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확히 8월 31일 귀국했다. 일부러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와 보니 밀린 일들이 있었다. 아직 인사 드려야 할 분들도 많이 있다. 지금은 해외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해외는 어디를 다녔나.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중국 베이징대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다. 중간에 독일에서도 한 달가량 머물렀다. 대학생들처럼 옆구리에 원서를 끼고 수업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다니고 주말에는 렌터카를 끌고 아내와 여행도 다녔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난 시점에서 이후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결국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고민이었을 것 같다. 해외에서 무엇이 가장 부러웠나.
“대화의 정치가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꼽겠다. 유럽은 의회정치의 성숙도가 최고 수준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좌파와 우파로 나눠 싸우지만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다수당으로 기능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좌파가 집권해도 우파와 연대해야 하고 우파가 집권하면 좌파를 설득해야 한다.”
―국내 정치 환경을 생각하면 답답했을 듯하다.
“단순 비교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동안 고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정치가 성숙할 시기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안에서 12년간 해왔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대화를 통한 합의의 정치를 복원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것만 같다. 새누리당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국회선진화법은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주도로 여야가 합의해 만들어진 법이다. 폭력 국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사항이다. 제대로 한 번 시행이라도 해 보고 문제를 제기해야지 벌써부터 성급하다. 물론 야당 쪽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진화법을 이용해 국회를 무력화하려고 하지 않나. 어떤 당이든 여당이 될 수 있고 야당이 될 수 있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은 청와대가 무서운가 보더라”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후폭풍은 없었나.
“후폭풍이랄 것까지야. 초선 의원들을 싸잡아 비판한 것처럼 들리지만 중점은 청와대에 있는 것이다. 초선 의원들도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나. 당장 다음 번 공천을 받으려면 지도부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하고 위에만 쳐다봐야 하는 구조가 문제다. 그럼에도 지난 18대 국회 때는 초선 의원들 모임이 활발했다. 모임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이를 토대로 당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안 보인다. 초선 의원이 실력이 없거나 무서워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개개인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훌륭한 분들이니 원인은 그런(청와대가 무서운) 것 아니겠느냐는 차원에서의 발언이었다.”
―확실히 과거 당내 소장파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
“소장파들도 결국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야 살아날 수 있는 정치인이다. 집권 초기에 그런 목소리를 내기도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토론이 실종됐다는 것은 결국 패착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친박근혜계를 떠올려 보라. 마치 야당인 것처럼 당 안에서 각을 세우며 싸웠다. 지난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세종시 수정안, 4대강 문제 등을 놓고 정권과 각을 세우고 치열하게 맞섰던 과정을 유권자들이 다 알고 있어서였다. 집권했다고 예전 모습을 버리고 일사불란한 움직임만 강요한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
“그건 북한의 김정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받치고 있는 것 아닌가. 아직도 공안정국을 조성하면 그게 작동하는 것도 두 사람의 역할이 크다. 원래 박 대통령에 대한 고정 지지율이 30%는 된다. 단순히 지지율이 높기에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번에 정부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낸 것은 어떻게 보나.
“법적 논리를 더 따져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분들이 정치하는 모습을 가까이 보면서 황당할 때가 많았다. 우리 국민에게는 모두다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북한 체제와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국민들에게는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이번에 야권에선 연대를 형성해 국정원 관련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송호창 의원은 JTBC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원희룡 전 의원을 미래 대통령 감으로 꼽기도 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아직 검찰 수사 중이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옹호한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다. 국정원은 그야말로 치열한 세계 정보전쟁에서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엘리트 조직이어야 한다. 현 정권을 위해 충성해야지 선거를 앞두고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지 예측하고 이에 충성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검찰 조사를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처음에 국민들도 그저 댓글 몇 개 달고 개인이 일탈한 것이라 보는 쪽에서 국정원에서 선거에 개입한 것은 맞는 것 같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마저 든다.
“통치에 가까운 방식이다. 이번 검찰 항명사태도 결국은 국정원 수사에 대한 외압과 반발로 일어난 것 아닌가. 일선 검사가 봤을 때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면 그게 누구든 기소하는 게 맞다. 거기에 청와대나 법무부의 개입은 있을 수 없다. 한 쪽으로는 독립성을 보장한다면서 다른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주고 그 라인을 벗어나는 사람을 밀어내면 안 된다.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보이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검찰만 장악하면 향후 정국 운영이 원활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다.
“청와대에 있는 분들의 속마음을 알 수야 없으니 팩트(사실)가 무엇인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를 내리고 지검장이 수사팀의 수사 의지를 꺾으려는 과정은 그런 말이 나오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검사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임명장을 받는다. 본인 소신에 맞지 않으면 직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과 국정원이 이렇게까지 대립하는 것도 처음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튀는 발언’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튀는 정도가 아니라 불순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나는 헌법 가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치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민들이 더 이상 순진하다거나 모를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송호창 의원이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미래의 대통령감’으로 원희룡 전 의원을 꼽았는데 안철수 신당으로의 러브콜로 읽히기도 한다.
“국회 최고 꽃미남 의원이 칭찬을 해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그게(미래 대통령감이) 다른 정당 의원 중 고르라는 얘기더라. 송 의원이야 안철수 의원을 쓰면 안 되고 그렇다고 없다고 쓰면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 가장 새누리당스럽지 않은 사람을 생각하다 나를 거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철수 신당의 세력화는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의 심각한 세대갈등과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소모적인 정쟁을 막기 위해 중간 영역에서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낸다는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앞으로 그런 목소리들이 점점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안철수 의원일지는 모르겠다. 안 의원은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정치를 계속 할지 말지를 고민하셨던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 이번 재·보궐 선거를 거치며 시기를 놓쳤다고 본다. 내 역할은 새누리당 안에서 새로운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인가. 지난 2011년 전당대회 때 다소 무리하게 출마해 결국 총선 불출마까지 이어졌다.
“그 이전에 내가 당에서 사무총장과 재·보선 공천심사를 맡았다. 선거에 패배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였다. 하지만 정권 말기 친이계가 급격히 몰락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숱하게 요청이 왔다. 그런 구도는 적절하지 않다 생각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출마를 권유하는데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 솔직히 뽑힐 것이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깨질 줄은 몰랐다.”
―내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선거 출마를 위해 세를 모은다거나 그런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외국에서 1년여를 보냈던 것처럼 국내에서도 보다 긴 시간을 갖고 당 안팎으로 사람을 만나고 지지자와 국민들 목소리도 들어보고 싶다.”
―고민 중이라는 정치인들은 결국엔 다 나가더라.
“이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많이 하셨다. 일단 올해 안에 책부터 끝마쳐야 한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