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스포츠 도박을 개설한 사이트 운영자는 돈을 주고 개인정보 리스트를 구입한 뒤 불특정 다수에게 사이트를 홍보하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보낸다. 그들의 홍보에 관심을 느낀 이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데, 이때 신원이 확실하거나 기존 회원이 보증한 사람이면 사이트 운영자가 자신의 대포폰 번호를 알려준다. 그리고선 EPL 경기가 열리는 날에 대상 경기를 정해 회원들에게 ‘돈을 걸라’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대포통장 계좌번호를 알려준다. 회원들이 대포통장에 베팅액을 입금하고, 경기가 끝나면 운영자는 배당액을 계산해 다시 회원들이 알려준 계좌로 돈을 쏴준다. 이때 쓰이는 회원들의 계좌도 대부분 차명계좌다. 잃으면 수십만 원이지만, 따면 100배 이상의 고배당도 비일비재하기에 불법 스포츠 도박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웬만해선 빠져나오기 힘들다.”
불법 스포츠 도박계에선 이렇게 경기 승부에 돈을 거는 걸 ‘맞대기’라 한다. 하지만, 맞대기의 승률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연예인들 사이에서 ‘국외축구 전문가’로 불렸던 모 연예인은 맞대기에서 4억 원이나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조사를 받은 유명 연예인들은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통해 국외리그 경기에만 돈을 걸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연예계에선 이들이 국내 스포츠 경기 도박에 더 열심이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연예인 A 씨는 “검찰리스트에 오른 모 연예인의 경우 평소 스포츠 스타들과의 교류를 과시하며, ‘쟤네들이 내 정보원이야’라는 말을 자주했다”며 “그땐 ‘정보원’이란 말이 뭔 소린지 몰랐지만, 지금은 대충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 프로야구, 축구, 농구, 배구 선수들은 연예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일쑤다. 특히나 어린 선수들의 경우 ‘물주’를 자처하는 연예인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는데, 선수들에게 여성 연예인을 소개하는 것도 바로 ‘스폰서 연예인’들이다.
문제는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의 관계가 ‘검은 결탁’으로 이어지곤 한다는 데 있다. 실례가 있다.
지난해 2월 야구, 축구, 농구계가 승부 조작으로 몸살을 앓을 때 <일요신문>은 연예계의 마당발로 알려진 기획사 대표 K 씨를 취재했다.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과 ‘형, 동생’하며 지내던 K 씨는 “유명 스포츠 선수 가운데 상당수가 ‘스폰서 연예인’을 두고 있어 깜짝 놀랐다. 몇몇 선수는 스폰서 연예인의 부탁을 받고 엉뚱한 플레이를 했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며 “선수 입장에선 엉뚱한 플레이였을지 몰라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경기 조작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검찰 조사를 받은 연예인 대부분도 국내 스포츠 스타와 밀접한 친분 관계를 맺던 이들이다. 이 가운데 B 씨는 국외파 스포츠 스타서부터 비인기 스포츠 선수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B 씨는 종종 프로야구 선수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는데 B 씨를 잘 아는 K 씨는 “야구장을 자주 찾던 B가 지난해 프로야구 경기 조작 파문 이후엔 야구장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며 “2011년 야구장을 같이 갔을 때 투수를 가리키며 나에게 ‘형, 쟤는 무조건 초구가 볼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2월 검찰은 프로야구 경기 조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초구 스트라이크·볼’을 꼽았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베팅에서도 ‘초구 스트라이크·볼’은 비중이 큰 베팅 항목이었다.
검찰은 현재까진 국외리그 경기에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관련자들의 소환과 수사를 계속 진행하며 국내리그 경기를 대상으로도 불법 베팅을 시도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검찰의 꾸준한 단속과 스포츠계의 정화 노력에도 불법 스포츠 도박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경기 조작을 일삼던 브로커와 운영자들이 다시 사이트를 개설해 활동 중이란 소문까지 들리고 있다. 그래선지 각 구단 프로 스포츠 관계자들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선수들을 밀착 관리 중이다.
스포츠계는 검찰의 꾸준한 단속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불법 스포츠 도박 근절을 위해 검찰이 더 강력하게 법을 집행해줄 것”을 당부한다. 모 프로야구 관계자는 지난해 2월 검찰 단속이 유야무야 끝난 것을 두고 “대단히 아쉬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 수사로 LG 선수 2명이 처벌받았다. 하지만, 야구계엔 그보다 훨씬 많은 선수가 경기조작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분명히 가담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 LG 선수 2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서둘러 매듭지으며 야구계에 만연했던 경기조작 씨앗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야구계에서 ‘LG만 바보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이 새어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만약 당시 철저하게 수사해 ‘경기조작에 가담하거나 불법 스포츠 도박에 참여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강한 의지를 검찰이 보여줬다면 불법 스포츠 도박은 어느 정도 근절됐을지 모른다.”
스포츠계 인사들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거듭 당부하며 “불법 스포츠 도박에 관련된 연예인들의 구장 출입을 영구히 막는 등 스포츠계 스스로도 불법 스포츠 도박 근절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