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LIG그룹 오너 일가가 LIG건설의 사기성 기업어음(CP)에 투자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그룹 핵심 계열사인 LIG손해보험 지분을 모두 내 놓는다.
LIG손해보험은 19일 최대주주 구본상(사진) 외 특수관계인 16인의 보유 주식 전량(1257만4500주, 지분율 20.96%)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LIG손해보험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지분 매각 사유는 “LIG건설 기업어음(CP) 투자자 피해 보상액 재원 마련”이다.
또 LIG손보는 “주관사 선정 작업부터 착수해 매수희망자 모집 및 가격 협상 과정을 통해 매각이 이뤄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진행 일정은 차후에 결정될 예정이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IG그룹은 지난 1999년 정부의 '5대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따라,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둘째 동생인 고 구철회 회장 일가가 LG화재(현 LIG손해보험)로 분가하면서 시작된 기업집단이다. 이런 역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LIG그룹에서 LIG손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연 매출 8조 원 이상을 기록하며 그룹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도맡고 있는 회사가 LIG손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오너 부자 구속 사태를 초래한 LIG건설 사기 CP발행 문제를 하루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LIG그룹으로선 극약 처방을 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항소심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최대한의 선처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6.78%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인 구본상 LIG그룹 부회장(구속 중)과 0.24%의 지분을 가진 구자원 회장(구속 중) 등 특수관계인 16명이 보유한 1257만 4500 주 전체를 매각하는 결정은, 곧 LIG손해보험이 LIG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오너 일가의 지분을 시가로 환산하면 약 3600억 원대에 달한다. 경영권까지 포함해 매각하는 것인 만큼 실제 매각 가격은 4000억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LIG그룹은 지난 14일부터 LIG건설이 발행한 CP를 샀다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절차에 들어갔는데 약 1300억 원 가량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자원 회장 등 총수 일가의 현금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그룹 내 핵심 금융계열사인 LIG손보의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내놓는 결단을 내렸다.
LIG손보의 매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LIG그룹 총수 일가는 CP 투자자에 대한 피해 금액을 돌려주고도 상당 금액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LIG건설 CP를 샀다가 피해를 본 피해자는 약 700명으로 총 피해 금액은 약 2100억 원 규모다.
LIG그룹은 올해 초 2억 원 이하 투자자를 비롯한 550여 명의 투자자에 약 450억원, 지난 8월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투자자 50여 명에게 약 280억원 등 총 730억원을 지급한 바 있다. 올해 말까지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해 추가로 1300억 원 가량을 지급하며 보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구 회장은 매각에 앞서 임직원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LIG손보는 저와 임직원의 피땀이 어려있는 만큼, 영원히 함께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며 “하지만 투자자 피해보상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회사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지분매각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LIG그룹이 LIG손보를 매각하기로 결정 하면서 LIG그룹은 LIG넥스원 중심으로 새롭게 사업구조가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LIG그룹은 현재 금융(LIG손보·LIG투자증권·LIG투자자문·LIG자동차손해사정)과 방산·첨단기술(LIG넥스원·LIG에이디피), 엔지니어링(LIG엔설팅), 서비스·IT(㈜LIG·LIG시스템)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룹내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LIG손보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면 LIG넥스원 등 방산, 기술부문 사업이 그룹내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한편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김용관 부장판사)는 2000억 원대의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된 구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보다 앞서 구 회장의 장남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도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