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비서실장과 ‘참모 3인방’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간에 파워게임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정계 입문 후 보좌진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 기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보좌관을 포함해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모두 ‘원년 멤버’들이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박 대통령 신뢰는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친박근혜계 의원실 보좌관은 “네 명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과묵하고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원하는 참모 스타일에 부합했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대선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4인방은 박근혜 정부 창출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이들은 각각 온라인 홍보 및 후원단체 관리(이춘상), 정책(이재만), 메시지(정호성), 일정(안봉근)을 맡아 막후에서 선거를 이끌었다. 대선 핵심 전략과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결정이 4인방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캠프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다. 대권 유력 주자였던 박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이들을 정치권에선 ‘4대 천황’, ‘재선 의원급 보좌관’과 같은 수식어로 불렀다.
여기엔 부정적인 뉘앙스도 담겨 있다. 이들이 박 대통령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지난 대선 당시 4인방이 박 대통령 불통 리더십의 근원지로 지목받으며 인적쇄신론 대상으로 거론됐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이에 대해 4인방 중 한 명은 지난해 기자에게 “우리는 주군(박 대통령)을 위해 일할 뿐”이라며 “사욕을 부렸더라면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 함께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반문한 바 있다.
이춘상 보좌관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3인방’이 된 이들은 대선이 끝난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정권 기초를 설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재만·정호성 비서관은 당선인 비서실에서 첫 내각 인선 작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3인방 중 맏형인 이재만 비서관의 경우 박 대통령 자택 근처에 별도의 사무실을 꾸려 인사 검증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친박 내에서조차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밀실 인사’의 실무가 이 비서관 손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던 것이다. 안봉근 비서관은 인수위 행정실에 배속돼 박 대통령 의중이 인수위에 잘 반영되도록 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여권 주변에서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으로 짜여진 3각 편대가 인수위 주요 사안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다고 한다.
3인방은 예상대로 박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입성했다. 각각 청와대 살림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이재만), 대통령 일정과 보고서를 전담하는 제1부속실 비서관(정호성), 각종 민원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 비서관(안봉근)에 발탁된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최측근이 임명됐던 직책들이다. 3인방은 비록 비서관급이었지만 그 파워 면에서는 수석비서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몇몇은 이들을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왕비서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차관과 비교하기도 했다.
이 중에서도 정호성 비서관은 ‘실세 중 실세’로 급부상했다. 박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선 반드시 정 비서관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조차 정 비서관을 통한 후에야 박 대통령과 독대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수석들은 보고를 하기 전 정 비서관을 만나 박 대통령 심기를 살핀다고도 알려져 있다. 정 비서관은 여러 곳에서 올라오는 각종 보고서와 자료를 취합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지난해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가 고 이춘상 보좌관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장례식을 찾아간 모습. 참모들에 대한 각별한 신뢰를 보여준 사례다. 사진공동취재단
부속실 1·2비서관은 업무 특성상 외부 민원이나 각종 자료들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게 된다. 여기서 주를 이루는 게 바로 인사 관련 청탁이다. 공식적인 인사 논의가 이뤄지는 인사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실제론 박 대통령 절대 신임을 받고 있는 정호성·안봉근 라인이 인사에 있어서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여권에선 부속실에 줄을 대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허 전 실장과 3인방은 인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런 배경에서 쉽게 이해가 간다.
김 실장 역시 부임하면서 부속실과의 관계 정립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김 실장으로서는 국회의원 출신도 아닌 3인방과 인사를 놓고 겨룬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것일 수 있다”며 “김 실장은 인사에 부속실이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렸다. 인사 창구를 김 실장 본인에게로 일원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김 실장은 역대 정권에서 부속실에 근무하는 대통령 측근들이 비리에 휘말렸던 사례를 여러 차례 언급했던 적이 있다. 3인방이 철저히 몸을 낮춰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게 김 실장 생각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는 김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3인방의 힘을 빼려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실장에게 밀리며 입지가 좁아든 3인방 역시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김 실장 독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담긴 새누리당 보고서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이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접한 김 실장 측은 상당한 불쾌감을 털어놨다는 후문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부속실은 박 대통령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3인방이 박 대통령에게 누군가를 흠집내려한다면 그것은 일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당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청원 의원 공천을 밀어붙였던 세력이 3인방이란 새로운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여권 내에서 김 실장과 필적할 만한 거의 유일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서 의원을 앞세워 권력 구도를 흔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가에선 서 의원 공천을 김 실장이 주도했다는 게 정설로 통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3인방이 고 최태민 목사 사위 정윤회 씨에게 ‘SOS’를 보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 씨는 1998년 박 대통령 입법보조원으로 일하면서 현재의 보좌진을 ‘세팅’한 장본인이다. 정 씨는 2004년 국회를 떠난 이후에도 참모 4인방과 ‘핫라인’을 구축, 막후에서 박 대통령을 위한 정치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2012년 대선 때도 정 씨가 비선라인에서 박 대통령을 도왔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정 씨가 온갖 잡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가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과 무관치 않다. 박 대통령은 정 씨 관련 의혹이 나올 때마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며 정 씨에게 힘을 실어줬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김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후 참모 3인방이 위축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10월경 정 씨가 박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 씨가 박 대통령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낸 3인방의 협조 요청을 모른 체 하진 않았을 것이다. 향후 정 씨가 청와대 내 파워게임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