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04년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그리스에게 패하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로이터/뉴시스
축구 전문 사이트인 ‘트랜스퍼마르크트’가 최근 축구 선수들의 시장 가치를 환산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1위는 메시(1억 2000만 유로(약 1730억 원))가, 그리고 2위는 호날두(1억 유로(약 1441억 원))가 차지했다.
사정이 이러니 언제부턴가 호날두 앞에는 ‘2인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호날두이기에 이런 별명은 썩 달갑지 않을 터. 연봉만 놓고 본다 하더라도 1600만 유로(약 230억 원)를 받는 메시보다 100만 유로(약 14억 원)를 더 받으며, 후반기 활약 역시 호날두가 우세했다.
하지만 축구 선수의 인기를 가늠하는 데에는 실력과 몸값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는 팬들로부터 받는 호감도 역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런 축구팬들에게 호날두와 메시를 비교하는 것은 어느덧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를 나타내는 듯 요즘 축구 비평가들과 호날두 안티팬들 사이에서는 유행하는 농담이 하나 있다. 어느 날 호날두와 메시가 교회에 앉아 있었다. 둘은 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호날두가 말했다. “신은 인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도록 나를 지상에 내려 보냈지.” 그러자 메시가 말했다. “말도 안 돼. 나는 아무도 내려 보내지 않았는데!” 이는 메시의 별명이 ‘메시아’, 즉 ‘구세주’라는 데서 따온 농담이다.
이런 비유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메시가 부상만 아니었다면 올해도 틀림없이 발롱도르를 수상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편 <포쿠스>는 호날두가 축구 전문가들이나 축구 마니아들 사이에서 비호감으로 비치고 있는 데에는 그의 감성적인 성격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이는 호날두의 별명이 어릴 적부터 줄곧 ‘울보’였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유년 시절부터 경기에 패하거나 동료 선수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면 곧잘 눈물을 보이곤 했던 호날두는 프로리그에서 뛰기 시작한 후에도 몇 차례 눈물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9월, 골을 넣은 후에도 이렇다 할 골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채 비통한 듯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마르카>는 “호날두는 지난해 여름 고비를 맞았다. 같은 팀 선수들이나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그는 2004년 포르투갈에서 열렸던 유럽 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약체 그리스에게 패한 것이 너무나 분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눈물을 잘 흘리는 감성적인 성격은 어린 시절 골목 축구를 할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도 동네 소년들과 어울려 축구를 할 때면 곧잘 울었던 호날두는 8세 때 유소년 클럽 ‘안도리냐’에 입단한 후에도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대개는 경기가 잘 안 풀리거나 다른 선수들이 자신에게 공을 패스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호날두의 모친인 돌로레스는 “호날두는 동료 선수들이 공을 패스하지 않거나 누군가 골을 놓치면 울거나 화를 내곤 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 호날두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안도리냐’의 후이 산투스 회장 역시 “호날두는 절대 패배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에 지면 자주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다”고 말했다.
10세 때 ‘나시오날 마데이라’로 이적했던 호날두는 쉽게 화를 내는 성격으로 동료 선수들과 마찰을 빚곤 했다. 그리고 2년 후 ‘스포르팅 리스본’ 클럽에 입단한 후 합숙생활을 하면서 이런 다혈질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은 더욱 문제가 됐다. 당시 처음으로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섬을 떠나 본토로 향했던 그는 그때의 심경을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울고 있던 가족들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5월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가 토킥으로 유벤투스 골키파의 키를 넘겨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런 생활이 힘들었던지 호날두는 종종 집에 전화를 걸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아들을 달랠 수 없을 때면 호날두의 모친은 비행기를 타고 아들을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아들을 집으로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페레이라는 “호날두 어머니는 우리의 훈련 방침을 이해했다. 그래서 아들을 다독여주곤 했다”고 말했다.
17세 때 프로리그에 데뷔했던 호날두는 이듬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대망의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했다. 여기에는 당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던 데이비드 베컴의 후계자로 키우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호날두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언제, 그리고 어디서건 호날두는 울보였다. 2009년 9400만 유로(약 1357억 원)라는 역대 최고의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에 둥지를 틀었던 호날두는 처음 마드리드 홈경기장에 섰을 때에도 감격에 겨운 듯 훌쩍였다. 2009년 7월 6일 저녁 9시 18분 자신을 보기 위해서 하루 종일 기다렸던 8만 명의 관중 앞에서 호날두는 그렇게 프리메라리가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후로 호날두는 웬만해선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웬만해선 좌절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호날두를 비호감이라고 치부하는 축구팬들은 그가 거만하고 자기애에 빠져 있다며 비난한다. 그저 이런 점을 재능과 공 차는 실력으로 만회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아들끼리도 생일 차이 ‘869일’
메시 부자(위)와 호날두 부자.
세기의 라이벌인 호날두와 메시와 관련된 ‘869’라는 숫자의 놀라운 우연이 밝혀져 화제다.
최근 한 트위터리안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선 호날두는 메시보다 869일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호날두의 아들인 호날두 주니어 역시 메시의 아들인 티아고보다 정확히 869일 먼저 태어났다. 호날두 주니어의 생일은 2010년 6월 1일, 그리고 티아고의 생일은 2012년 11월 2일인 것. 그리고 호날두의 생일은 1985년 2월 5일이며, 메시의 생일은 1987년 6월 24일이다.
이를 밝혀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누리꾼은 “의심된다면 한번 직접 계산해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쯤 되면 전생에 둘은 분명 원수이거나 혹은 절친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