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을 위한 에로물에는 한류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남자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왼쪽 작은 사진은 여성 성감 자극기 ‘이로하’.
텐가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은 이로하(iroha). 일명 ‘로터’라 불리는 성인용품으로 여성의 성감대를 진동으로 자극해주는 기기다.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단박에 화제가 됐고, 곳곳에서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일본 여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누가 성인용품을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일본에서만큼은 그런 편견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로하가 이처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제품을 처음 보면,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외형이 참신 그 자체다. 성인용품이라고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세련된 디자인에 말캉말캉 매끄러운 신소재의 감촉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사실, 남성용 성인용품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디자인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네이밍 또한 ‘이로하’ 대신 ‘진동기’라고 확실하게 붙였을지 모른다. 즉 사용자가 여성이기에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제품을 고안해낸 것이다. 현재 일본의 전반적인 관능 문화가 그렇다. 기존의 남성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여성을 위한’ 새로운 관능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AV를 예로 들면, 여성의 관능은 섹스만으로는 안 된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여성들은 설렘을 느낀다. 때문에 여성용으로 제작된 AV는 마치 드라마처럼 탄탄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다. 남성용 AV에 자주 등장하는 ‘만나서 몇 초 만에 섹스’ 같은 비현실적인 전개는 없으며, 곡예를 보는 듯한 체위도 나오지 않는다. 흔히 AV를 볼 때 남성들이 ‘빨리 감기’ 하는 부분이 여성들이 원하는 부분이란 점도 흥미롭다.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 올해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인 업체가 있다. 바로 여성 AV 제작회사 ‘실크라보(SILK LABO)’다. 보통 AV업계에서는 DVD 3000장이 팔리면 ‘대박’이라고 말하는데 실크라보의 작품들은 종종 1만장 정도의 판매를 기록한다. 주 소비자는 20~30대의 젊은 여성들. 그러나 최근에는 중년 여성들로까지 확대돼 팬 층이 한층 두터워졌다.
이쯤에서 일본 여성들이 실크라보의 AV에 열광하는 비결이 궁금해진다. 이와 관련 일본 대중지 <주간포스트>는 “여성이 원하는 성적 판타지를 충실하게 만족시켜 주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덧붙여 기사는 여성 AV만이 갖고 있는 매력도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여성용 AV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 없는 섹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드신 자체는 남성이 봐도 화끈거릴 정도로 충분히 야하지만, 사랑의 안타까움과 설렘을 확실히 표현해 설득력을 갖는다. 말하자면 자극적인 섹스가 있는 연애스토리에 가깝다.
또 주인공의 방이나 호텔 등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도 공을 기울인다. 샴페인, 장미꽃 등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품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올해 인기를 끈 여성용 AV들을 살펴보면, 공통되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자 배우는 한류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타입이 많다는 것. 남성용 AV는 까만 피부에 마초 성격의 남자 배우들이 주를 이루지만, 여성용 AV에는 흰 피부에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남자 배우들이 등장한다.
둘째, 키스신이 자주 연출되나 대부분 격렬한 키스가 아닌 부드러운 키스 중심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살짝 입술을 맞대는 버드키스(Bird Kiss)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용 AV에서 꼭 그리는 것은 남성이 콘돔을 착용하는 장면이다. 이는 “왠지 성관계를 맺는 상대를 소중하게 대하는 남성의 상냥함이 느껴져서”라고 <주간포스트>는 전했다.
한편 여성들을 위한 관능 붐에 힘입어 지난 9월에는 여성 전용 에로소설 웹진 ‘플뢰르(fleur)’가 창간됐다. ‘성인 여성들이 지친 자신을 달래기 위한 비밀의 화원’이라는 콘셉트로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에로스와 읽을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플뢰르의 편집장은 “에로소설을 읽는 여성은 욕구불만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달라. 여성의 경우 성욕처리보다 가슴 뛰는 설렘을 맛보기 위해 읽는 사람이 많다”면서 “일반 연애소설에는 그려지지 않는 야한 부분을 제대로 표현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쉽고 은밀하게 인터넷서 즐긴다
일본 여성을 위한 관능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현상을 두고 주간지 <여성세븐>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평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제는 여성도 사회에서 결과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지친 여성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보조제로서 ‘관능’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여성세븐>은 “달라진 인터넷 환경도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했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분명 야한 것을 보고 싶은 여성들의 욕구가 있었으나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것. 일례로 AV를 보고 싶어도 차마 대여를 하거나 가게에서 살 용기가 없어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아마존 등 인터넷 통판 환경이 갖춰지면서 여성들도 당당하고 은밀하게(?) 관능 문화를 찾게 됐다는 얘기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