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신상필벌’에 따른 인사태풍이 불고 있다. 사진은 LG그룹의 여의도 쌍둥이 빌딩(위)과 GS그룹 본사.
우선 사업실적이 부진했던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장을 권희원 사장에서 하현회 사장으로 교체했다. 권 사장은 세계적인 TV업계 불황이 이어진 데 따른 실적부진의 책임을 졌다. 신임 하 사장은 LG디스플레이에서 디스플레이 패널 사업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전략·기획통으로 손꼽히는데, 글로벌 투자를 추진해 LG의 디스플레이 패널 사업이 세계 1위에 오르는 데 기여한 것이 이번 발탁의 배경이다.
반면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사업본부에서 ‘G시리즈’ 등을 만들어내며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박종석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올 3분기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이 797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1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지만 대체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러한 실적주의 인사는 시장 선도와 성과를 부쩍 강조해온 구본무 회장의 뜻이 반영됐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구 회장은 줄곧 “사업 책임자가 의사결정을 주저하며 제대로 승부하지 못하거나 단기 성과를 위해 사업의 큰 흐름을 놓치면 결코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재계 8위이자 LG그룹과 한 지붕에 있었던 GS그룹도 같은 날 대폭적인 물갈이 임원인사를 했다. 전체로 보면 승진 41명 등 44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 지난해(35명)보다 규모가 컸다. 이중 22명이 GS건설 소속이다. 3분기까지 8000억 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책임을 물어 GS건설 임원진을 대폭 교체한 것이다. 특히 해외 사업장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엔지니어 출신들이 대거 발탁했다. 상무 승진자 16명 가운데 14명이 해외 플랜트·토목 담당이다.
외부로 공개되지 않은 ‘내부 인사’도 있었다. 주력 계열사인 GS칼텍스다. 겉으론 모두 8명의 전무·상무 승진자가 발표됐는데, 당초 관심사였던 허동수 회장과 허진수 부회장 간 힘의 균형변화는 표면화되지 않았다. 공식 인사안에는 없지만 요직인 여수공장 경영진의 일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과 허 부회장은 사촌지간이다. 허 부회장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친동생으로, 실질적 경영 책임을 지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간 허동수 회장 체제에서 생겨난 인맥이 허 부회장에게는 소신 있는 경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이번 연말에 큰 폭의 인사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으나, 일단 일부 경영진의 교체하는 선에서 인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유시장 자체가 불황이어서 조직을 크게 흔들기보다는 안정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재계 1위 삼성은 12월 초 사장단과 임원인사를 단행한다. 일부 사업재편이 이뤄졌고, 계열사 간 실적의 양극화가 나타나 비교적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승진 대상들은 최고의 실적을 낸 삼성전자 임원들이다. 올해로 임기 3년을 채운 사장급 이상 임원이 20명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윤부근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과 신종균 IM(IT·모바일)부문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사장은 TV부문, 신 사장은 스마트폰부문 1위를 이끌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올해 특별 경영진단을 받은 삼성 계열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올해는 삼성정밀화학,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특별 경영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진한 실적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이미 지난 8월 박기석 사장을 경질하며 책임을 물은 만큼 이번에는 임원들 차례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이건희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의 거취도 관심사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은 잘 알려져 있듯이 수시로 인사가 이뤄진다. 12월 정기인사에 대한 ‘공포’가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현대차는 올 들어 제기된 대규모 리콜과 품질 논란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이뤄졌다. 다만 해외 영업과 마케팅에 대한 전략적 인력교체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대차의 해외 영업은 정의선 부회장이 맡고 있다.
‘오너 부재’ 상태인 SK·한화그룹은 인사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조직에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안정에 더 치중하는 분위기다. SK 관계자는 “인재육성위원회에서 각 부분의 경영평가를 하고 있는데, 인사 폭은 현재의 경영기조를 유지하는 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
삼성가 자매 동반 승진할까
삼성가 장녀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왼쪽)과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최근 사장단 인사를 한 재계 7위 현대중공업그룹도 2년 만에 회장 체계를 부활시켜 이재성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12월 중순 후속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인데,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31)도 임원으로 승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43)과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40)의 승진 여부가 초점이다. 이 사장은 지난 2011년 사장에 올라 호텔신라의 면세점부문을 확장하고 호텔 리모델링을 이끌어 어느 정도 후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사장은 승진 후 3년이 지난 만큼 이번 인사에서 사장 승진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이 에버랜드로 넘어간 만큼 이 부사장도 에버랜드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