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가 지난 11월 22일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시국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창신 신부는 11월 22일 시국미사에서 “NLL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계속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북한에서 쏴야 한다.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다”라고 발언했다. 당시 박 신부의 강론에 따르면 “(지배층이)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 선거 때마다 이용해왔다. 자신들 입장과 다르면 ‘종북’으로 모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는 게 주 내용이었으나 앞의 발언이 문제가 되며 ‘종북 논란’을 촉발시켰다.
가뜩이나 ‘시국미사’를 불편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여권은 예상대로 일제히 박 신부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일례로 11월 27일 한 여권 의원은 박 신부에 대해 “신부라고 인정할 수 없다. (박 신부는) 사제복을 입은 혁명 전사나 마찬가지”라며 비난의 날을 세웠다. 이밖에도 여권은 박 신부가 소속된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도 “(사제단이) 언제부턴가 종북 세력으로 변질됐다”고 일격을 가하며 사실상 ‘정의구현사제단’까지 정조준하고 나선 상황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전주교구 사제단은 지난 11월 22일 ‘불법 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에서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의 총 책임을 지고 사퇴를 표명하라”고 촉구해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여권은 주로 박 신부의 ‘연평도’ 관련 발언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만을 집중 공략해 ‘북한을 옹호했다’, ‘사제복을 입고 종북 선전을 했다’는 식의 초강경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여권이 박 신부를 두고 강경 대처를 하게 된 주 배경에는 최근 박 신부가 박근혜 정권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겨냥해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조직적으로 지금의 대통령에게 유리한 댓글을 올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대선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불법 부정선거임이 명확해졌다”고 발언한 것이 청와대 측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시 말해 현재 여야가 겉으로는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둘러싼 종북 문제로 다투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국정원 댓글’ 사건을 두고 정치적인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측 일부 신부들의 발언이 정치권에 폭풍을 일으키더니 이젠 검찰도 ‘정쟁’에 휘말릴 태세에 몰렸다. 보수단체들이 여권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사격에 나서면서부터다. 보수단체 ‘자유청년연합’, ‘활빈단’ 등이 서울중앙지검과 전주지검에 “박창신 신부가 북한을 두둔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각각 고발장을 접수하자 검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와 관련,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내에서도 현 시국을 두고 ‘유신 민주주의’가 왔다는 얘기가 나돌 지경이다. 앞으로 (청와대로부터) 박창신 신부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리’하라는 압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마당에 솔직히 (박 신부를) 처벌할 만한 형사처벌 조항이 현재로선 없다. 때문에 담당 검사가 누가 될지 안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박 신부가 북한을 옹호했다고 하던데 이 부분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검찰 관계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한다고 처벌한다는 게 말이 되나. 검찰 인사들은 다 안다. 박 신부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걸…”이라면서도 “다만 요즘 정치권 분위기로 봐서는 윗선(청와대)의 압박이 들어올 게 분명하고, 자리 내놓고 싶지 않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검사들 스스로가 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털어놨다.
박 신부의 ‘NLL’ 발언 건은 검찰에서 어떻게 처리될까. 향후 검찰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펼쳐질까. 한 검찰 관계자는 “예전에 박 신부 건과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며 노무현 정권 시절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대표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서 대표는 집회에서 ‘국군들이여, 대통령을 거부하라’는 내용의 발언을 해 문제가 됐다. 대통령은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다. 서 대표는 문제의 발언 이후 내란선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으나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서 대표가 무혐의 판정을 받는 데 약 2년 반이 걸렸다. 검찰 관계자 다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 신부 고발건도 2~3년 후에나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처벌) 안 되는 걸로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나. 박 신부의 강론을 전부 살펴봤는데 몇 문장만 딱 집어내면 마치 종북 논란을 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전체를 읽어보면 북한을 옹호하고자 하는 취지를 찾기 어렵다”며 “때마침 인사철이니 담당 검사도 늦게 배정될 것이고, 사건이 배정된다 하더라도 그 다음 타자에게 계속 떠넘기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조용히 마무리되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 봤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박 신부를 염두에 두고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는 강경 비판을 하는 판국에 검찰이 청와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공정 수사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검찰 내부에선 의심쩍은 반응이 지배적이다. 앞서의 한 검찰 관계자는 “현 정권에서 박 신부를 무혐의 처리하면 청와대에서 한 소리는 듣겠지. 그래도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에서 이런 공포심을 주는 정권은 없었으니까 또 모르지. 청와대 입맛을 안 맞췄다는 이유로 채(동욱) 총장도 쫓겨나고 존경받던 검사들도 줄줄이 중징계를 먹는 마당에 (청와대가) 무슨 짓이든 못하겠느냐”라며 자조적인 평을 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