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개인적으로 기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열성팬이었다. 기자의 아이디 ‘레디’(leady)가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약자일 정도다. 그렇지만 이는 90년대 이야기일 뿐 그가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은 <갱스 오브 뉴욕> 이후에는 조금씩 그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최근작 <장고:분노의 추적자>를 볼 즈음엔 ‘예전의 그 멋진 배우가 연기파 악역이 됐구나’하는 정도의 감흥뿐이었다. 아무래도 기자가 좋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잘생긴 외모에서 풍기는 로맨틱한 이미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영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고 그 느낌으로 선택한 영화 <타이타닉> 역시 좋았다. 세계에서 가장 감미로운 이미지의 배우로 여기던 그가 조금씩 광기어린 이미지를 보이기 시작하며 기자는 점점 그에게서 멀어졌던 것 같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며 기자는 오랜만에 20대 시절인 90년대에 열광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을 다시 봤다. 기자 역시 나이를 먹었으며 그 배우 역시 연륜이 쌓였지만 그가 과거 보여준 바로 그 로맨틱한 이미지가 이번 영화에서 다시 엿보였다. 참고로 기자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동갑이기도 하다. 사랑 앞에 설레고 다정하고 로맨틱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다시 되돌아왔다. 알고 보니 <위대한 개츠비>의 감독이 바로 96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한 바즈 루어만 감독이었다. 가장 문학적인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바즈 루머만 감독이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이번엔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인 <위대한 개츠비>를 선보였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재즈가 넘쳐흐르는 영화 <물랑루즈>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그때의 재즈 선율과 춤 등이 이번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매우 잘 알려진 소설이다. 1922년 당시 미국 사회를 그린 <위대한 개츠비>를 드라마 <상속자들>에 빚대어 설명하자면 대대로 내려온 명문가 자제와 졸부의 자제, 그리고 사배자(사회배려자)가 미국 사교계에서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엄청난 부를 소유한 명문가 갑부들과 금주법을 활용해 밀주 사업 등으로 큰돈을 벌어 드린 신흥갑부들이 사교계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개츠비는 바로 신흥갑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자칫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조금은 지루한 영화라고 판단하는 영화팬도 있을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시대상을 제대로 알고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미국은 매우 독특한 상황이었다.
미국 역사에서 1920년대는 ‘재즈 에이지’ ‘광란의 20년대’ ‘무법의 10년’ 등으로 불린다. 당시 미국 역사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금주법 시행이다. 1920년 시행돼 1933년까지 이어진 금주법으로 인해 미국에선 술을 밀수하고 밀주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이들이 큰돈을 벌었다. 이들이 바로 이 시기의 신흥갑부가 됐는데 갱과의 관계도 밀접했다. 경기는 호황이었다. 월가를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엄청난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광란의 10년은 1929년 월가의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으로 마무리된다. 대공황 직전 사회 전체가 흥청망청 대던 시기가 바로 1920년대다. 개츠비의 거대한 저택에서 열리던 대규모 파티, 밀주와 재즈가 넘쳐나는 바로 그 파티는 바로 대공황을 앞둔 미국 사회를 압축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신흥갑부에 해당되는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엄청난 명문가 갑부 집안의 톰(조엘 에저튼 분)이 한 여성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세한 줄거리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줄이려 한다. 오히려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즐기려면 1920년대 미국의 시대 상황은 알고 있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모르는 채 관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영화에서 화자 역할을 맡은 닉이 베일에 싸인 개츠비에게 다가가며 그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개츠비가 왜 닉에게 왜 접근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개츠비가 신흥갑부라는 사실도 스포일러일 수 있다.
이왕 스포일러를 조금 흘린 김에 가장 근본적인 궁금증에 대해서도 잠시 짚고 넘어가자. 제목은 <위대한 개츠비>다. 왜 개츠비는 위대한 것일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닉이 정리한 글의 제목은 <개츠비>다. 그렇지만 닉이 펜으로 개츠비 위에 'a great'(위대한)이라는 글자를 추가한다. 적어도 닉은 개츠비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개츠비는 결코 위대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악인에 가깝다. 그럼에도 닉이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여긴 까닭은 격변기였던 미국의 1920년대를 살아간 개츠비에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으며 사랑에 대한 ‘순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