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한국에도 이런 영화가 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은 사실 본격적인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에서 느낄 때가 많다. 단편영화 <진영이>로 제 37회 탐페레국제단편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등 다수의 영화제에 진출했던 이성은 감독이 연출하고 인디스토리가 제작 배급하고<사랑해! 진영아> 역시 딱 이런 영화다.
물론 영화가 기대이하라는 평을 내놓은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진영이(김규리 분)만큼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한국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 만화적인 설정을 활용해 우울할 수 있는 진영이의 일상을 경쾌하게 풀어간 이성은 감독의 연출력은 분명 돋보인다. 프랑스 영화의 <아멜리에>의 아멜리에와 일본 영화 <노다메 칸타밀레>의 노다메에 비견되는 한국의 진영이라면 너무 과대한 평가일까. 적어도 기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좀비 영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진영이의 일상은 비루하다. 연애는커녕 키스 한 번 못 해본 채 서른을 맞이한 진영이는 잘나가는 이복동생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고 있다. 대개 영화 주인공들은 이런 현실쯤은 가볍게 극복하고 성공하곤 하지만 진영이는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할 가능성 역시 매우 적어 보여 안타깝다. 게다가 생리불순으로 찾아간 병원에선 서른 살까지 100% 처녀인 진영에게 갱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같은 집에서 살게 된 이복동생의 지인 제이미에게 동성애를 느끼낀 진영은 서른의 나이에 뒤늦게 성정체성까지 고민하게 된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진영이에 의한 진영이를 위한 진영이의 영화’다. 그러나 보니 진영이 역할을 맡은 주연 배우 김규리가 영화를 전반적으로 끌어 나간다. 자칫 산만한 스토리와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결말로 그저 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랑해! 진영아>는 진영이라는 돋보이는 캐릭터와 이를 제대로 살려낸 배우 김규리의 힘으로 한계를 극복했다. 제대로 망가지려 했다는 김규리는 기자시사회에서 “영화에서 너무 안 예쁘게 나왔죠?”라며 쑥스러워 했지만 영화 속 진영이는 너무나 빛나고 예쁜 청춘을 제대로 살려낸 캐릭터였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축하공연을 할 만큼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여배우’은 김규리는 클럽 장면에서 완벽하게 망가지는 취중 막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두 손을 뻗어 올리고 내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이 막춤에 대해 김규리는 “촬영 당시 장미란 선수가 은퇴를 해 장미란 선수가 역기를 드는 동작을 따서 만들어낸 춤”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영화답게 신선한 캐릭터와 경쾌한 화법, 그리고 만화적인 코믹 설정 등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결말에 이르러선 상업영화, 아니 드라마의 막장 코드까지 답습하고 있다는 부분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선한 애피타이저와 독창적인 메인 요리를 먹은 뒤 후식으로 다방 커피를 마신 느낌이랄까. 결말과 관련된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구체적인 표현은 자제하려 한다.
엄마가 무당인 수상한 자녀 역할의 두 아역배우 김민주와 정인서는 이 영화의 가장 확실한 맛깔스런 양념이다. 알바로 학습지 교사를 하는 진영이의 제자인 이들 자매는 선녀님의 도움을 받아 진영이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코믹하다.
요즘 청춘들의 조금은 무거운 현실을 경쾌한 언어로 풀어나간 영화 <사랑해! 진영아>는 진영이를 알게 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한 번쯤 인연을 맺어볼 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 바로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서른 살 여성들의 솔직한 속내와 고민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부가판권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김규리의 파격 노출이 나오는 영화인 양 소개되곤 하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없다. 설정 자체가 진영이는 서른까지 키스조치 못해본 서른 살 처녀다. 영화 홍보 과정에 망가지는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SNL 코리아>에 출연한 김규리가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꽃잎 노출신을 패러디한 것이 마치 영화에서도 노출이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졌을 뿐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