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영화를 수치적으로 보는 게 그리 적합한 일은 아니지만, 영화 <레드>의 1편과 2편을 출연 인물로만 비교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편의 주요 인물 가운데 모건 프리먼이 빠지고 2편에선 안소니 홉킨스, 캐서린 제타 존스, 그리고 이병헌이 합류했다. 배우들을 수치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부적절하긴 하지만 최소한 ‘안소니 홉킨스, 캐서린 제타 존스, 그리고 이병헌’의 조합이 모건 프리먼 한 명보다는 더 강력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곧 <레드> 1편보다 <레드> 2편인 <레드 : 더 레전드>가 더 재밌다는 등식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기자는 그렇게 봤다.
최근 몇 년 새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국내 팬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시리즈 영화는 단연 <지.아이.조>와 <레드>다. 두 편 모두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 이병헌이 출연했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지.아이.조> 1, 2편에 모두 출연했으며 <레드>에는 2편인 <레드 : 더 레전드>에만 출연했다.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영화는 단연 <지.아이.조> 1편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이다. 검증된 감독인 스티븐 소머즈가 연출을 맡아 새로운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의 탄생을 알렸지만 감독이 존 추로 바뀐 후 <지.아이.조2>는 말 그대로 기대 이하였다. 1편에서도 나름 존재감을 보인 이병헌은 2편에서 훨씬 비중이 커졌지만 영화 자체가 재미없어진 터라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그렇지만 소득은 있었다. <지.아이.조2>에 합류한 브루스 윌리스와 친분을 쌓아 <레드 : 더 레전드>에 출연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레드> 시리즈는 1편보다 이병헌이 합류한 2편이 더 재밌다. 그렇다고 <레드> 1편이 재미없다는 얘긴 아니고 1편도 재밌었지만 2편 <레드 : 더 레전드>가 더 재밌다는 의미다.
브루스 윌리스를 중심으로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등이 1편에 이어 다시 출연한 <레드 : 더 레전드>는 1편보다 더 규모를 키웠다. 은퇴한 레전드급 첩보요원들이 다시 뭉친다는 설정은 1편과 동일하지만 스케일이 훨씬 커졌다. 세계 각지를 누비며 벌이는 이들의 첩보전은 정통 첩보물에 뒤지지 않으며 나이가 지긋한 배우들의 액션 장면 역시 젊은 배우들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Retired, Extremely Dangerous’의 초성 조합 합성어인 ‘RED’는 ‘은퇴했지만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미국방부와 FBI, 그리고 영국 MI6, 러시아 첩보기관 등이 모두 ‘밤그림자’의 재가동을 막기 위해 첩보전을 벌인다. 이미 은퇴한 CIA 요원인 프랭크(브루스 윌리스 분)와 마빈(존 말코비치)이 이번 사건에 휘말리는 까닭은 그들이 현직에 있을 당시 ‘밤그림자’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은퇴한 CIA 요원에서 억울하게 테러리스트로 지명수배가 된 프랭크와 마빈은 목숨을 건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아무래도 국내 영화팬들 입장에서 <레드2>의 주된 관람 포인트는 이병헌의 활약상이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세계 최고의 살인청부업자 ‘한’ 역할로 출연한다. 미국 정부는 한에게 프랭크의 살인을 청부하고 이에 따라 한은 전세계를 누비며 ‘밤그림자’의 실체를 추적하는 프행크 일당을 뒤쫓는다. 사실 영화 중반부까지 이병헌은 정식 출연이 아닌 카메오 정도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중반부 이후 이병헌의 캐릭터는 조금씩 비중을 늘려갔고 헬렌 미렌과의 멋진 자동차 액션 장면 등을 선보인다.
이병헌이 맡은 ‘한’이라는 캐릭터는 한국인으로 과거 한국의 첩보원이었지만 프랭크 때문에 누명을 쓰고 살인천부업자가 된 인물로 나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 캐릭터가 아닌 한국인 캐릭터로 나오고 짧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장면도 나온다는 부분 등은 <레드 : 더 레전드>를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볼거리이기도 하다.
꼭 이병헌이 아닐지라도 <레드 : 더 레전드>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은퇴한 첩보원들이 벌이는 첩보전을 그린 영화라는 기본 콘셉트에 매우 충실하기 때문이다. <레드> 1편이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2편인 <레드 : 더 레전드>는 첩보전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영화 자체를 즐기는 재미는 더 크다. 그런 만큼 <레드 : 더 레전드>를 재미있게 보려면 <레드> 1편을 미리 보길 추천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