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열린 국가기관 선거개입 진상규명 범야권 연석회의에 안철수 의원, 천호선 정의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이 참석한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1월 20일 법원에 2차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접수했다. 트위터 상에서 국정원과 연계된 정치, 선거 관련 글 ‘121만 건’을 추가로 발견했다는 취지다. 121만 건 중 64만 7000여 건은 선거 관련 글, 56만 2000여 건은 정치 관련 글로 알려졌다.
121만 건의 트위터 글은 국정원 직원이 직접 작성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리트윗’을 통해 퍼져나간 것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리트윗은 트위터에 업로드된 글을 다른 계정을 통해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국정원 직원이 트위터를 통해 글을 쓰면 뒤이어 다른 계정 수십, 수백 개가 이를 퍼뜨리는 식이다. 검찰은 이처럼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모두 ‘2653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계정(2653개) 중 대다수가 정치, 선거 개입 등 불법적인 목적에 동원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 직원 1명이 수십, 수백 개 계정을 사용한 셈이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된 계정 가운데 여권 성향의 보수, 우익 단체 블로그나 언론, 논객 등이 쓴 글은 대대적으로 퍼 나른 정황이 최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여권 성향, 박근혜 지지, 야권 비난 등 ‘입맛’에 맞는 글이면 어김없이 트위터를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신속하고 광범위한 확산을 위해 ‘자동화 프로그램’을 사용한 정황이 밝혀지기도 했다. 검찰의 2차 공소장 변경에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분석한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국정원은 ‘트위터 피드’와 ‘트위터 덱’이라는 봇(트위터 글을 한꺼번에 퍼 날라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대선이나 정치 관련 글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렸다”라고 밝혔다.
이중 ‘트위터 피드’는 원하는 사이트 주소를 써 놓으면 30분이나 한 시간 단위로 해당 사이트에 새롭게 올라온 글을 연계된 트위터 계정을 통해 퍼트리는 프로그램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 측이 트위터 피드에 써 넣은 사이트 주소들이 대부분 ‘극우’에 가까운 사이트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극우 사이트들의 글들을 여론에 퍼뜨리고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분석한 ‘2차 공소장 범죄 일람표 분석서’에 따르면 국정원이 트위터 피드에 연결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트 종류는 총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언론, 트위터 당(트위터 상에서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주소가 그것이다. 이 중 언론은 뉴데일리, 데일리안, 뉴스파인더, 독립신문, 푸른한국닷컴, 데일리NK 등 보수 성향 언론이 대부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민족의 원수 김정일은 조문해도,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 묘소는 못 가”(뉴데일리), “안철수 ‘진심캠프’가 아닌 ‘관행, 의혹캠프’”(푸른한국닷컴), “오만한 안철수, 국민을 졸(卒)로 본다!”(뉴스파인더) 등의 기사를 트위터 계정을 통해 퍼뜨리면서 가끔 간단한 의견을 덧붙이는 식이다.
국정원과 연계된 트위터 당은 대한민국애국보수주의 연합(코쿤), 자칭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추종세력들의 순수 소모임(세이프코리아),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박근혜와 함께(트위터 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임(대한민국 국가정체성 회복을 위한 대국민 연합 트윗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트위터 당의 글은 보수 언론보다 더욱 강하게 ‘박근혜 지지’, ‘문재인, 안철수 반대’ 의견이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신공격에 가까운 글들도 있어 국정원이 이 같은 사이트를 연동한 배경에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요즘 종북이들은 대갈통이 쇳조각이다, 요즈음 종북이들은 IQ 지수가 엉망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목동 음대녀에 꽂혀있더이다”(안철수 반대), “이정현, ‘박근혜 지지율 반등은 이제부터’” 등의 글이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정원이 박사모에서 인용한 주요 글은 대선을 두 달가량 앞둔 2012년 10월 30일에 게재된 “이런늠(민주당 관계자)은 포청천의 개작두로 댕겅해야 하는 거 아닌지” 글이다. 국정원과 연계된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를 분석한 정의당 서기호 의원실 관계자는 “121만 건에 달하는 국정원의 트위터 글이 워낙 방대해 일단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부터 11월까지 분석을 진행했다”며 “이 기간 동안 국정원이 박사모에 연계한 정황이 잡혔기에 공소장에 명시된 총 기간(2011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을 분석해 보면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더욱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사모와 국정원의 연계 가능성은 검찰에서도 계속 은밀하게 주시하고 있는 사안인 것으로 전해진다. 봇을 이용한 트위터 계정 연계 정황뿐만 아니라 박사모 간부 김 아무개 씨가 국정원 직원과 연계됐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소장에는 포함이 되지 않았으나 검찰은 김 씨의 트위터 계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할당한 것으로 보이는 관리번호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의혹에 검찰은 박사모 회원들의 통화 내역을 분석하는 등 물밑 수사를 은밀하게 진행하며 박사모와 국정원의 연계 가능성에 대한 정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정원과 범여권 성향의 모임이나 단체들이 트위터를 통해 연계됐다는 정황이 광범위하게 밝혀짐에 따라 국정원이 대선과 정치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이 국정원 심리전단 간부의 이메일에서 확보한 ‘인터넷 매체 관리 대상 명단’에 비추어 이번에 밝혀진 매체나 사이트 등이 해당 명단에 포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해당 명단을 확보하며 이를 우선 ‘극비’에 부쳤으나 국정원이 민간업체를 통해 관리 매체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이를 받은 매체가 기사화하면 국정원이 다시 트위터를 통해 퍼뜨리는 ‘3각 연계’에 대한 의혹이 대대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인터넷 매체 관리 대상을 확보했다는 얘기만 들릴 뿐 포함된 매체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확정지을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여러 정황을 볼 때 그럴 가능성(관리 매체와 트위터 계정 연계 단체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예상했다.
이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분석한 범죄 일람표는 2012년 10월부터 12월까지의 기간 동안만 분석해 공소장에 제기된 기간을 모두 분석하면 국정원과 범여권 단체의 트위터 연계 정황은 더욱 자세히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검찰로부터 제출받은 트위터 글 121만 건은 A4 용지 앞뒷면으로 박스 8개 분량에 달해 물리적으로 모두 조사하기 어려웠다”며 “이번에 국정원이 보수 단체의 글을 대대적으로 리트윗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국정원 직원의 개인적인 일탈 행위가 아닌 조직적인 선거개입이라는 점이 밝혀졌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