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영화 산업이 잘 되려면 국가 전체의 콘텐츠 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 일본의 경우 만화 시장과 애니메이션 시장 그리고 소설 등 영화의 원천 소스가 되는 기반 콘텐츠 산업이 잘 다져져 있다. 재미있는 만화책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다시 드라마로, 결국 영화화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다메 칸타빌레>다.
반면 한국은 출판 시장이 오랜 침체기를 겪으며 원천 소스가 될 만한 만화와 소설 등이 다소 빈약한 편이다. 그나마 영화계에 활력소가 되어준 영역이 바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웹툰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계속해서 제작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계에선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감독 겸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은 웹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인이다. 본인이 직접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끼>와 <전설의 주먹>을 연출했으며 최근엔 <더 파이브>를 제작했다. 아무래도 원작자가 따로 있는 웹툰을 영화감독이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직접 두 편의 웹툰 원작 영화를 연출하며 그런 한계를 느낀 탓인지 강우석 감독은 <더 파이브>의 경우 아예 웹툰 원작자에게 직접 영화 연출을 맡기고 본인은 제작자로 나섰다.
이로써 정연식 감독은 웹툰 <더 파이브>의 원작 작가이자 영화의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직접 맡게 됐다. 워낙 큰 인기를 끌었던 웹툰인 데다 원작자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는 이유로 큰 관심을 불러 모은 영화 <더 파이브>는 지난 11월 개봉했지만 70만 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에서 극장 개봉 성적이 마무리됐다. 최근 부가판권 시장에 나오면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고 있지만 극장 흥행 성적은 너무 아쉬운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분명 <더 파이브>는 극장 흥행을 기대하고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김선아를 중심으로 온주완 이청아 마동석 신정근 정인기 박효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음을 감안하면 분명 아쉬운 성적이다.
기본적으로 원작인 웹툰에서 따온 영화의 기본 설정은 매우 독창적이며 흥미진진하다. 창조주를 꿈꾸는 예술가, 실제 모습은 변태적인 연쇄살인범에게 14살 딸과 남편을 잃은 은아(김선아 분)는 당시 사고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돼 휄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심지어 두 다리까지 잃은 은아는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 하지만 그에겐 가진 것이 없다.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힘 내십시오”라는 말만 반복하며, 오히려 성치 않은 몸으로 직접 복수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은아를 귀찮게 여길 뿐이다.
이런 은아가 갖고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흔치 않은 혈액형인 RH-O형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혈액형이 RH-O형인 불치병 환자들의 경우 장기 이식을 받으려 해도 같은 혈액형의 뇌사자에게서만 가능하다. 바로 은아는 이 부분을 무기로 삼는다. 자신과 같은 혈액형인 RH-O형으로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의 가족 가운데에서 자신의 복수를 도와줄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 것. 물론 자신의 복수를 돕는 대가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장기 기증이다.
그렇게 은아가 모으려 하는 사람은 ‘모든 정보와 현재 위치를 알려줄 한 사람’ ‘놈의 얼굴 확인과 동선을 파악해줄 한 사람’ ‘확인된 놈을 잡아다 내 앞에 묶어 줄 한 사람’ 그리고 ‘장기이식 수술의 모든 진행과 절차를 책임질 한 사람’ 등 네 명이다. 이렇게 네 명의 조력자에 은아까지 복수를 위한 다섯 명이 모이게 된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더 파이브>이며 영화 홍보 카피가 ‘다섯이 있어야 완벽한 복수’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부분까지는 영화가 정신없이 진행되며 관객들을 빨아 드린다. 이런 독창적인 설정으로 인해 원작인 웹툰도 큰 인기를 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렇게 모인 다섯 명의 복수극은 다소 기대 이하다. 사건 당시 살인범이 가져간 은아의 남편 지포 라이터를 통해 간단하게 살인자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부분부터 '완벽한 연쇄살인범이 맞나' 관객들의 의구심이 시작된다. 연쇄살인범이 실체를 드러낸 뒤에도 복수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소 험난하지만 이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액션 장치들일 뿐, 치밀한 두뇌 싸움 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결국 다섯 명의 멤버들이 모이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독창적이었지만 그 이후 복수극은 기존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뒷심이 약하다. 아니 복수 자체에 포커스를 둔 영화들과 비교하면 복수극은 다소 허술하다. 영화가 복수극인 만큼 핵심 포인트는 ‘복수’ 자체가 돼야 하는 데 반해 영화 <더 파이브>는 복수를 위한 멤버들이 구성되는, 다시 말해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각자의 목적이 서로 다른 터라 서로를 믿지 못해 초반에는 다소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복수를 위한 다섯 명이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까지 영화의 러닝타임 123분 가운데 절반인 60여 분이 소요된다. 이 시점까지는 영화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며 후반부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후 본격적인 복수극이 펼쳐지는 후반부 60여 분에선 다소 많은 아쉬움이 엿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뒷심 부족이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둔 결정적인 원인이 아닌가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