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홍보수석이 지난 9일 춘추관에서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언어살인이며 국기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총동원해 비난을 쏟아냈다. 연합뉴스
지난 12월 9일 이 수석의 논평이 나온 과정은 왜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심기경호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시작은 이날 오후 2시쯤 있었던 이 수석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브리핑 도중에 나온 한 기자의 질문이었다. 당시 브리핑을 지켜본 인사들에 따르면 민주당에서 잇따라 나오는 막말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 수석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고 한다. 이 수석은 “여러분에게는 그게 그저 막말 정도로 들리느냐. 이걸 막말로 받아들인다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법적 대응에 나설 건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이 수석은 말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는 “이게 법적으로 대응할 문제냐”면서 “대통령을 시해하라고 시키는, 이게 국회의원이 할 소리냐”고 내질렀다. 이 수석이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숨을 몰아쉬면서 “조금 있다가 다시 와서 논평을 내겠다”고 말할 때에는 금세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양승조 의원, 장하나 의원
“양승조 의원이 대통령에 대해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는 것은 언어살인과 같다”고 포문을 열기 시작한 이 수석은 이어 양 최고위원의 발언을 ‘국기 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이 수석은 “양 최고위원의 발언은 박 대통령에 대해 위해를 선동·조장하는 무서운 테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이렇게 무너뜨리고, 그렇게 해서 나라를 망가뜨리겠는 의도가 아니고는 이런 발언을 할 수가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이 이 같은 분노의 논평을 낸 이유에 대해 양 최고위원이 박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수석의 논평이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형적인 심기경호요, 과잉대응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는 이 수석의 논평이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한 새누리당 재선 의원은 “대선불복을 선언한 장하나 의원에 이어 양승조 의원까지 막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민주당 지도부도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이 수석이 너무 과하게 맞대응하면서 분위기가 이전투구 양상으로 바뀌어 버렸다”며 “양 최고위원이 분명히 지탄받을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대통령 위해 선동’이라는 이 수석의 해석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수석이라면 사안별로 대응할 게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면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정현 수석이 나에 대한 위해를 선동하고 있다”는 양 최고위원의 주장에 여당 의원이 공감을 표한 셈이다.
코레일 최연혜 사장이 13일 코레일 서울본부 프레스룸에서 ‘철도노조 파업 장기화 대비 열차운행계획 변경 기자회견’을 했다. 코레일 측은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참가자 전원을 직위해제 했다. 최준필 기자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이유는 심기경호와 그로 인한 과잉대응 사례가 이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청와대 참모들뿐 아니라 각 부처와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은 물론 공기업까지 대통령만을 의식한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코레일 측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파업 참가자 전원을 직위해제한 게 대표적이다. 철도노조 파업 1주일도 채 안된 상황에서 직위해제된 코레일 직원은 8000명에 근접한 상태다. 경찰이 민주노총의 불법 시위를 이유로 향후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모든 불법 시위자들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과잉대응의 단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신호를 내리자 아랫사람들이 마치 충성경쟁을 하듯 초강경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역사교과서에 대해 한마디 하자 교육부가 필자들과의 전면전을 무릅쓰고 ‘교과서 개악’을 밀어붙인 것, 그리고 해직교사 6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만들기를 시도한 것 등을 심기경호용 ‘오버’의 사례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결국 측근들의 발호를 통제할 수 있는 건 대통령뿐”이라며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권력이 너무 가혹하면 민심이 떠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