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 체제가 그랬고, 소련에서도 고르바초프 서기장 시절의 개혁개방이 그런 것이었다. 소련은 러시아로 바뀐 후 국민 개표(皆票) 방식의 선거제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전인대 체제지만 별 탈 없이 굴러가고 있다. 지도자 교체가 이뤄져 이전 정권의 과오가 부분적이나마 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에서 숙청의 피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혈통세습의 필연적인 결과다. 조선왕조에서 일본의 천황 시절을 거쳐 바로 김일성 왕조체제로 넘어가 김정일-김정은 3대로 이어진 것이 북한의 권력체제다. 선거 및 대의제도가 있지만 왕조 유지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숙청극은 왕조 수준을 능가한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고모부이자 제2인자 격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그의 추종세력을 사실상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했다. ‘반동의 무리’를 규합해 ‘국가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으로 ‘국가전복음모’를 획책했다는 혐의다.
장성택은 2010년 병석에 있던 김정일에 의해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지명돼 당과 정부, 군부의 요직에서 승승장구하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엔 그의 부인 김경희와 함께 인민군 대장으로 급조되기도 했다.
김정일은 혈족만으로는 안정된 후계가 어렵다고 여겼음인지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를 군부 쪽 후견자로 세웠으나 김정은은 지난해 그를 돌연 숙청했다. 당시 리영호는 장성택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평가됐고, 이번 장성택 제거는 군부의 복수극이라고 볼 수 있다.
세습의 고리를 끊는 것이 역성(易姓)혁명이다. 김씨 성이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권력이 넘어가야 과거청산이 가능해진다. 핵 개발은 북한의 정체를 초래한 근원으로 청산돼야 할 가장 큰 오류지만 김정은한테서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포기하는 불효 짓이라 기대할 수 없다.
북한 내에서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에 이해를 갖고 있었던 소수의 인물 가운데 하나였고, 김씨 왕조를 대체할 거의 유일한 인물로 기대를 모았던 장성택이 숙청당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주민을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폈다. 김정은 체제에 이르러 혈족의 일원이었던 장성택마저 숙청해야 할 만큼 체제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왕조의 종말이 다가 오는 조짐으로 볼 수 있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