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개국공신 ‘3인방’ 김종인 전 경제수석,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안대희 전 대법관(왼쪽부터). 이들은 모두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실상 뒷방으로 물러났다. 일요신문 DB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친박계의 강력한 견제를 뚫고 ‘중립인사’들을 기용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자존심 강한 박 대통령이 ‘삼고초려’해 모셔왔다던 ‘3인방’인 김종인 전 경제수석비서관, 안대희 전 대법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등은 보수일색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서 숨통을 틔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대선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최근 박 대통령의 행보를 살펴보면 대선 전 언제 그랬느냐 듯 개국공신들을 중용하지 않는 데 대한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돌연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기약 없는 독일행을 결행했다. 김 전 경제수석은 지난 1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다 털어버려야지. 독일로 가는데 언제 돌아올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더 이상의 ‘연’을 기약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약속이나 한 듯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박근혜 정부를 향해 “(박 정부의) 남은 4년이 걱정된다”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이 명예교수는 “사실상 유권자는 대통령 후보자와 후보자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보고 표를 던지는 것인데…. 김종인 전 수석이 떠나는 게 아쉽다”며 불편한 심경을 털어놨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수석의 탈당을 예상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마련해 사실상 박 대통령을 ‘보위’에 올린 공신인데…이미 몇 달 전부터 여권 내부에선 김 전 수석이 ‘팽’당했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반면 안대희 전 대법관은 지난 11월 18일 세무조사감독위원장에 역임돼 ‘3인방’의 자존심을 그나마 지켜냈다. 하지만 이마저도 주변의 평가가 무서워 ‘위인설관’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은 그동안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 핵심요직 0순위에 주로 거론됐는데 “경력에 걸맞지 않은 ‘한직’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대선의 수훈 3인방이 모두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실상 뒷방으로 물러났다는 얘기가 된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기대 이하의 대접을 받은 것은 비단 개국공신 3인방뿐만이 아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 여권 핵심 인사 일부는 지난 12월 10일 청와대 인근의 한 식당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밀회동을 갖고 개국공신들의 인사 문제를 상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황 대표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성사됐다던 이 회동에선 ‘개국공신’들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설전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마침 당시 여당 내부에선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이 교체 대상 1순위로 지목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대선 전 박근혜 후보의 지근거리에서 핵심참모로서 보좌했던 개국공신들이다. 하지만 허태열 전 비서실장,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전격 교체된 지 100여 일도 지나기도 전에 또 다시 비서관 급에서 ‘교체’라는 명목의 ‘경질’ 설이 나온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개국공신들을 상대로 ‘2년만 참아 달라’는 말씀을 했다고 한다. 주변 눈도 있으니 당분간 고향 땅에서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측이 인사를 하는데 일관성이 있었으면 별탈이 없었는데 개국공신 일부는 중용되고 대다수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마나 중용된 일부는 경질되거나 좌천됐다”며 “반면 생각지도 못한 친박 원로 인사들이 갑작스레 무게감 있는 자리에 중용됐다. 이에 기약 없이 선거전에서 발로 뛰었던 개국공신 다수가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핵심 3인방을 시작으로 앞으로 공신들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점차 크게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까지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다는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생각하기엔 이들의 유효기한이 다 됐다고 보는 거다. 1년 정도면 많이 봐 준 것 아니겠느냐”라고 밝혔다. “교체 주기가 너무 짧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여권 관계자는 “원래 (박 대통령이) 진득한 스타일이 아니다. 특히 정권 초반 1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잘못된 인사로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얼마 전 청와대 최측근으로부터 ‘(박 대통령이) 마음이 급해지신 것 같다’고 들었는데 얼마 안 가 바로 내부적으로 인사 교체 플랜이 기획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올해 초 문희상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삼자회동에서 문 위원장이 한 말을 귀담아 들었던 것 같다. 당시 회동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문 전 위원장과 박 대통령의 과거 친분도 있었고. 문 위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과거 대통령을 직접 모셔보니 정권 초 100일이 중요하다. 1년 안에 국정 과제 대부분을 착수해야 한다’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줬는데 이때 박 대통령의 표정이 굉장히 진지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근래 들어 사람에 대해 인내심이 떨어진 것 같다. 기회를 줬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자 초조해지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현재 심경을 설명했다. 초조해진 박 대통령의 해법은 ‘참모진 전격 교체’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교체된 배경에는 이들이 ‘인사’ 과정에 생긴 잡음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가 한몫했다고 한다. 최근 박 대통령이 인사에 대해 초조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정국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오히려 균형감각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 특유의 장점인 원칙이 무너지면서 대선공신이나 신주류 할 것 없이 가차 없이 자르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대통령 주변에는 더욱 ‘아첨꾼’들만 모여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이유도 제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냉혹한 리더십과 권력운용 원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최고 권력자의 통치행위를 몸으로 체험한 그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권력운용을 답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좀 먼 예가 될지 모르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대표적인 개국공신 김종필 전 총리를 끝까지 멀리 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인사는 반드시 내쳤다. 그 뒤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을 한번 보라. 쓴소리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모두 목숨 걸고 충성 맹세까지 할 정도의 인사들밖에 없다. 개국공신 아니라 그 이상의 인사가 있어도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강경-온건을 아우르는 중립지대 인사들의 설 자리는 앞으로도 없다. 그래서 이 정권이 더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12월 말경 여권에서 눈여겨 볼만한 자리가 예정돼 관심을 모은다. 최근 친박계 한 거물급 의원은 지난 대선에 참여했던 개국공신 핵심 30여 명을 소집했다고 한다. 이번 회동에 참여하게 될 한 관계자는 “한 해를 정리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이 자리에서 속 끓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야권의 강경한 공세에도 묵묵부답이다. 하물며 개국공신들의 불만에 눈 하나 깜짝 하겠느냐는 자조 섞인 얘기도 친박계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