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전 비대위원은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대통령이 대립정국을 이끌어 가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명박 정부도 2010년 야당인 민주당에게 패배했다. 즉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009년 국정 수행을 하고 난 뒤 2년 만에 주저앉은 셈이다. 이것을 보면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그때와 비슷하게 현재로선 여론이 새누리당에게 그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 실망감을 느꼈다고 보는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묻지마’ 지지층 35% 이외에도 약 10~15%에 해당하는 추가적인 지지세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유동층이 현재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기대한 게 아니다’라고 보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지난 1년을 돌이켜보라. ‘윤창중 전 대변인 사태’에서부터…. 이밖에도 2012년 한 해 동안 누누이 강조했던 약속과 너무 거리가 멀지 않은가. 독주적인 행태, 말하자면 대통령이 대립정국을 이끌어가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많다.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조차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여태껏 박 대통령과 독대 한번 못해봤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와대에 들어가 본 사람이 있긴 있나(웃음). 이명박 정권의 실패를 딛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소통의 달인이 되어 팀워크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적임자들에게 위임해줘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대통령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챙기는 ‘마이크로 매니저’에 머무르면 그 정권은 실패하게 돼 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에서 패한 이유를 봐라. 어디를 폭격할지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를 놓고 ‘여왕님’이 등극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1년 가까이 기자회견이 없었지 않은가. 국민이 언제까지 참아줄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계속 갈 생각인가. 언론도 대통령에 대한 취재를 포기했지 않은가. 이런 현상은 분명 좋지 않다. 대통령과 주요 장관은 미디어를 통해서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고 정권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설득을 해야 한다. 미국의 힐러리 국무장관이 미디어와의 컨택을 부산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기자회견도 없고 심지어는 대변인도 없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있지 않은가.
“김행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은 걸 본 적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이 정권은 대변인 없이 쭉 가기로 한 건지, 아니면 김행 대변인 본인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지난번 윤석열 부장검사가 중징계를 받은 것을 두고 검찰개혁이 실패했다는 말도 나왔다.
“검찰개혁? 시작이라도 했었나. 대선 전에 했던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문에 검찰, 정계, 청와대까지 난리다.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받았던 채 아무개 군의 신원 조회를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사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요 공직자를 임명할 때 평판조회를 어떻게 하였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윤창중 전 대변인이 대표적인 인사 실패 케이스다. 검증을 제대로 안하고 임명하니까 문제다. 조오영 행정관 건은 민간인을 신원조회해서 문제가 된 것 같은데. 글쎄, 그 배후가 누굴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윗선이 있었을는지.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나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이미 다 그만둬버린 상태에서 알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조 행정관 독자적으로 (신원조회를) 했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긴 하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 안대희 전 대법관이 정권 초기에 별다른 활동을 안 하자 박근혜 지지층 일부에선 최근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럴 수 있겠지.”
—이 명예교수도 그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나.
“박 대통령이 과거 야당 대표였을 때부터 지지했다. 오랜 기간 응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인사를 비롯해 국정 모드가 바뀌어 나가는 것을 보니 실망스럽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35% 정당이 된다.”
—최근 김종인 전 경제수석 등 대표적인 개국공신들이 ‘팽’ 당한 것이 아니냐며 여권 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잖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차피 틀렸다. 이제 와서 되돌아가기 어렵지 않은가. 김종인 전 수석도 떠나고.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틀어진 거 아닌가.”
—박 대통령이 공신들에게 소홀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우선 공신들이 누군지에 대해서 정의해보자. 이른바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을 뜻한다. 이미 박 대통령을 위한 대선프로젝트는 지난 2006년도부터 시작된 거 아닌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를 비롯해 박세일 교수, 나경원 전 의원, 전여옥 전 의원 등을 불러온 게 사실 박 대통령 본인이다. 그런데 종국엔 이들이 2007년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를 지지했다. 상당히 (박 대통령으로선) 뼈아플 거다. 심지어 당시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이 김무성 의원, 유승민 의원 등인데 현재 이 사람들하고도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았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박근혜 키드’인 이준석 전 비대위원, 손수조 전 미래세대위원장 등도 최근 현 정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는데.
“손수조나 이준석은 젊은 나이에 정치에 뛰어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불행하다고 본다. 뭔가 다른 걸 할 수 없게 됐지 않은가. 지난 총선 때 이들 덕분에 박 대통령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저변을 넓힐 수 있었다. 이제는 대통령이 이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봉급이 나오는 자리 정도는 해줬어야지. 나같이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을 챙기지 않는 건)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은 감사원장, 국무총리로까지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 좌초됐다.
“안 전 대법관을 중용하는 건 좋은 일이다. 안 전 대법관은 적어도 남이 준 쪽지를 읽을 사람이 아니니까. 뭘 억지로 시켜도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자기 발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진영 전 복지부 장관도 그런 케이스라고 봐도 되나.
“진영 전 장관은 안 전 대법관에 비해선 너무 순한 사람이다.”
—당시 진 전 장관의 사퇴를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
“(진 전 장관이)참고 참다가 나간 거지. 진 전 장관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거나 개성이 센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조차 제 발로 나갔다고 하면 ‘국정 스타일이 너무 경직돼 있는 건 아닌가’하고 자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1년 12월 30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한 이상돈 비대위원, 김종인 비대위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일요신문 DB
“그렇다. 동적인 게 너무 없다. 인사에 있어서도 그렇다. YS 때는 이인제, 손학규 등 정치 스타가 많이 생겼다. 사람을 키워서 대선주자 급으로 성장시켰다. 그때처럼 사람을 못 키우면 다음에는 정권을 한동안 (야권 쪽으로) 내줄 수도 있다고 본다.”
—김종인 전 수석이 대선에 참여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지지자들이 꽤 많았다.
“그때만큼 감동 있는 인사가 거의 없었다는 게 현 정권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유권자 일부는 대통령을 뽑을 때 그의 주변 인물들을 함께 보고 표를 던진다. 이를 두고 ‘그렇게 뽑았더니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다면 그건 유권자를 배신한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바로 내가 아까 말한 15%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일 것이다.”
—현 정권의 ‘인사’ 부분이 특히 우려되는 것 같다.
“청와대 수석과 주요 장관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런데 현재 그것을 갖춘 사람이 없다. 함량이 안 된다. 일례로 현재 청와대 경제수석이 ‘세금’ 분야를 전공한 사람인데 세금은 ‘방법’에 불과하다. 청와대 참모는 정책 메이커면서도 정치적 식견을 갖춰야 한다. 지금 있는 분들은 다 ‘무(無)자격’들이다.”
—‘청와대 민정라인 비서관급이 교체된다’는 설이 돌고 있다.
“또 교체하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두고 ‘왕실장’, ‘섭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말이 나온다는 건 김 실장의 말이 곧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정에 새로운 철학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너무 없는 것 같다. 비단 김 비서실장 말고도 청와대 내부 진영이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에겐 키신저가 있었고 지미 카터 대통령에겐 브레진스키가 있었듯이. 정권의 ‘색깔’과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 이 정권 들어선 너무 없다.”
—그나마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이 있다면?
“청와대에는 아무도 없다. 아, ‘깃털’ 수석 말고는. 한번은 조원동 경제수석이 세금 문제를 두고 ‘거위의 몸에서 아프지 않게 깃털을 뽑는다. 그것이 과세 당국의 입장’이라며 타이밍 맞춰 발언한 일이 있지 않은가. 난 그때 경제수석 이름을 처음 알았다(웃음).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시대는 어떤 걸 요구한다고 생각하나.
“이미 박 대통령이 밝혔다. 대통합, 정치쇄신, 검찰개혁, 경제민주화다. 여기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 내부에 있어야 하는데 도통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적합한 인물을 추천한다면.
“정치쇄신 분야에는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을 꼽고 싶다. 검찰개혁 분야는 안대희 전 대법관, 경제민주화 분야에는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경제민주화 이슈를 만든 김종인 전 수석은?
“탈당까지 하신 마당에 언급해봤자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앞으로 박 대통령이 어떤 ‘인사’를 해야 한다고 보나.
“김종인 전 수석,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은 어떻게 보면 기본적으로 여권 인사들이다. 이 세 명이 박 대통령과 멀어지고 있다. 이런 징후들이 좋지 않다고 본다. 특히 김 전 수석은 굉장히 경륜이 깊은 사람이다. 이 분을 중용하지 않은 걸 보면 박 대통령은 배짱이 없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과거의 모습과 현재 국정에서의 모습이 다소 달라서 헷갈린다. 현재의 모습이 본인의 뜻인지 타인의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그답지 않게 현재 ‘국정원 사건’에 너무 묶여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사건’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특검 받고 시원하게 털어야지. 자꾸 특검을 안 받겠다고 하니 그것을 갖고 야권 측에서 ‘전 정권의 문제라고 하면서 왜 겁을 내느냐’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가. 앞으로도 야권 측이 박 대통령을 겨냥해 ‘전 정권과 자유롭지 않은 관계 아니냐’면서 자꾸 발목을 잡을 텐데 국정 수행을 위해서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야당의 협력 없이 근본적으로 뭘 개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대위 시절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당사를 경찰이 지켜주는 나라가 어디 있나. 이젠 (특검 등으로부터) 더 지켜줘야 한다니. 서울 시내를 한번 봐라. 전경 버스가 더 늘어났다. 이건 뭔가 잘못 된 거다. 거리에 전경 버스를 없애는 게 바로 정치 아닌가. 이런 식의 대립적인 정치를 끌고 가면 앞으로 남은 4년, 제대로 못 간다고 본다.”
—박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박 대통령이 국정 방향과 스타일을 복원해야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린 이 ‘난파선’을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솔직한 얘기로 박 대통령이 인수한 대한민국은 지금 아주 침몰 직전이다. 역사는 침몰했을 당시의 선장 이름을 기록하지 않나. 우선 야당과 협력해야 한다. 이 정부 잘못되면 책임은 여당이 지게 된다. 한 쪽에선 ‘야당이 발목 잡아서 극복 못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게 말이 되나. 그럼 정권을 잡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특검을 수용해서 의혹은 깔끔하게 털고 가길 권한다. 어차피 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
—당에 계속 남을 계획인가.
“나까지 그만두면 대통령은 어떻게 되라고…. 참 걱정이다. (김종인 전 수석의 탈당을 염두에 두며) 저렇게 해서 당이 어떻게 가겠나.”
—안철수 신당 창당 시기에 박 대통령에 대한 ‘충언’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일각에선 이 명예교수가 안 의원 측으로 넘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안철수 의원을 사적으로 만난 일도 없고, 그 쪽으로 갈 일도 없다.”
—지난달 안철수 의원 측에서 러브콜을 보냈다는데, 사실인가.
“전혀 없었다. 설령 (러브콜이) 있었다 해도 내가 움직일 사람도 아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