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삼성동 헬기 충돌사고 이후 현재 신축 중인 제2롯데월드의 층수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윤성 기자
롯데는 CJ, 효성과 함께 이명박(MB) 정부에서 가장 잘나갔던 그룹으로 꼽힌다. 정권이 바뀐 후 CJ와 효성은 총수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시련을 겪었다. CJ와 효성은 ‘국세청 세무조사→검찰 고발→총수 소환’이라는, 흡사한 과정을 거쳤다. 정권이 기업을 ‘손보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사정당국과 재계 주변에선 이제 롯데가 그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롯데의 한 고위인사조차 “솔직히 불안한 건 사실이다. 일이 손에 안 잡힐 때가 많다. (CJ나 효성처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봤다”라고 하소연했다.
지금까지 이뤄진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그 강도는 CJ나 효성보다 훨씬 셀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올해 2월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가 세무조사를 받은 데 이어 지금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 정예조직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 7월부터 120일간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얼마 전 그 기간을 80일 늘렸다.
국세청 관계자는 “워낙 자료가 방대해 이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면서 “기간까지 연장한 만큼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롯데는 올해 상반기 공정거래위원회와 감사원으로부터도 조사를 받았다. 검찰과 경찰은 롯데 관련 비리 첩보를 수집하는 데 남다른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정기관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한 셈이다.
11월 16일 삼성동 아이파크 헬기 충돌 사건은 이처럼 위기에 빠진 롯데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삼성동 부근 잠실 지역에 신축 중인 제2롯데월드의 안전성 문제가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항공청은 고층건물 높이가 60m 이상일 경우 항공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것으로 분류하는데 제2롯데월드는 555m(123층)로 지어질 예정이다. 사고가 일어난 아이파크보다 3.5배나 높다.
더군다나 제2롯데월드는 성남 서울공항과 불과 5~6㎞ 떨어져 있어 언제든 사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비행안전성뿐 아니라 교통과 환경, 통신에 있어서도 제2롯데월드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재차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엔 제2롯데월드 꼭대기 층인 123층에서 지상까지 대피하려면 특별피난계단을 이용해도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롯데 입장에서 더욱 뼈아픈 부분은 이러한 얘기가 새누리당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제2롯데월드도 사고가 생길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 123층까지 다 지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있으니 일단 잠시 (공사를) 중단하고 안전성 검사를 한번 받아보자”고 제안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한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과정에 MB 정부의 특혜가 있었을 수도 있다며 안전성 진단이 졸속으로 실시됐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발표문을 통해 “제2롯데월드는 건축 인허가 심의를 거쳐 허가받았고 공정계획에 따라 건축 중”이라며 “555m 높이, 123층이란 층수 조정은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문가 및 전문기관을 통해 안전하다고 확인받았다. 제2롯데월드는 비행안전구역 밖에 위치하고 공군에 초정밀 감시장비와 항공기 지형인식 경보체계 등 최첨단 전자장비 등도 지원해 비행작전 등에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오는 2016년 완공되면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는 제2롯데월드는 신격호 회장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층수 조정이란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제2롯데월드 허가를 내준 서울시 역시 선을 긋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미 오랜 논의를 거쳐 건축허가가 났고 이것을 바꾸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가 (층수 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절차상 서울시가 결정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그것을 바꿀 큰 권한은 없다. 롯데가 소송이라도 걸면 서울시가 100% 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제2롯데월드 인허가 절차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적법하게 허가를 받아 진행 중인 공사를 서울시가 멈추게 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안전·환경 문제나 인허가 등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는 게 (박 시장) 생각”이라고 전했다.
신동빈 롯데회장.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제2롯데월드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제2롯데월드에 대한 보고서를 받은 후 궁금한 점을 관련 수석실에 문의했고, 또 안전성 등에 있어서 철저한 확인을 지시했다고 한다. 청와대 정무 파트 관계자는 “헬기 충돌 사고 이후 제2롯데월드와 관련된 내용을 종합한 보고서가 올라갔다. 박 대통령이 안보·민정 등 몇몇 수석에게 의문점을 물어봤다. 비행 안전성은 물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허가 부분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당이 ‘군불’을 때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다면 이제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인 ‘액션’이 취해질 전망이다. 특히 검찰 움직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층수 조정이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제2롯데월드 인허가 비리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고, 여기엔 검찰이 선봉장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이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롯데 입장에서는 안전성 문제가 거론되는 것보다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와 역점 추진 사업이 동시에 타깃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제2롯데월드를 포함한 롯데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모습이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상당한 양의 롯데 관련 자료를 수집, 축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OK 사인만 떨어지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그룹 전반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김진태 총장이 조만간 기업과 정치권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 사건을 진두지휘할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그 타깃이 롯데가 될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룬다.
채동욱 전 총장의 경우 CJ와 효성 등 굵직굵직한 기업 수사를 했고,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진태 신임 총장 역시 채 전 총장 못지않은 ‘특수통’이다. 김 총장으로선 수사 결과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고, 롯데로선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