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의 선박 저가 수주 여파로 국내 조선업계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채권단에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은 STX조선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선박 수주를 하면서 원가보다 20~30% 싼 가격에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를 만들면 만들수록 STX조선은 손해를 보게 되고, 재무구조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STX조선이 이런 불리한 저가수주를 한 이유는 선수금을 받아 지난해 닥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에 대해 STX조선 채권단 측은 수주 받은 선박 50여 척에 대한 계약 파기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STX조선 사측에서 먼저 계약을 모두 이행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일부에 대해 선박 건조를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계약 파기를 진행 중이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STX조선이 저가수주 때문에 배를 건조할수록 손실을 봐 경영난에 더 위기를 초래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또한 배를 건조하려면 도크 등 건조 시설의 능력이 돼야 하는데 대규모 수주를 받아 납기일을 모두 맞추기 힘들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STX조선은 드라이도크 1개와 플로팅도크 1개, 스키드버스 2개 시설을 갖추고 있어 동시에 최대 11척까지 건조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해양 측도 채권단으로부터 수주 계약 파기를 요구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다만 STX조선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계약한 50여 척뿐만 아니라, 건조에 착수하지 않은 모든 선박에 대해 검토 중에 있다”며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지만, 납기를 늦추는 등 재협상을 통해 수주 조건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계약 파기로 인한 손실액을 추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TX조선의 발목을 잡는 수주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조선소가 수익을 내는 선박 수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수익을 못 낼 수도 있고, 애초 수주를 받을 때부터 수익을 못 낼 것을 알면서도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전수 받거나, 새로운 선주와의 거래를 시작하는 의미로 저가수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일부 언론에서 나온 것처럼 수주 받은 모든 선박들이 유동성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저가수주를 했다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어쨌든 기존 수주에 대한 계약 파기 가능성은 남아있는 셈이다. 이에 조선업계에서는 STX조선해양이 수주 계약을 대규모로 파기하는 선례를 남기면 국내 다른 업체들에도 대외신인도에 문제가 생겨 향후 수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채권단 측도 그러한 면을 걱정하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업체에 미칠 여파를 생각해 STX조선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배를 건조할 수는 없다”며 “그런 것을 고민하기에는 STX조선 앞에 놓인 상황이 급박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지난 11일 열린 STX조선해양 채권단은 회의를 통해 STX조선에 대규모 부실이 추가로 드러나 종전에 자율협약을 통해 지원을 약속한 2조 7000억 원 외에 1조 8500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의 산업은행 관계자는 “강덕수 회장 등 기존경영진 체제 하에서 STX조선이 부실을 숨기고자 정밀실사 때 자료를 왜곡하거나 제출하지 않았다”며 “이번에 추가로 드러난 부실은 저가수주 물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대규모 손해배상 9000억여 원과 원가 상승으로 인해 증가한 5700억여 원, 신규 수주 물량 감소로 인한 적자 3300억 원 등 총 1조 8500억여 원”이라고 설명했다.
STX조선 관계자는 추가 자금지원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1조 8000억 원은 부실 규모를 추정하는 채권단 측의 시각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는 아니다”며 “향후 회사 운영에 따른 현금 흐름이나, 기존 수주에 대한 계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 등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현재로선 STX조선 채권단이 추가 부실에 대한 자금지원을 할지는 미지수다. 채권단은 STX조선이 자금지원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이를지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채권단에서 STX조선이 자금지원을 해도 살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다면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STX조선은 법정관리 혹은 파산에 처할 수가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