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 A 씨는 서울 B 초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A 씨는 아들이 야구선수의 꿈을 꾸자 자신의 모교인 B 교로 아들을 전학시켰다. A 씨는 다른 학부모처럼 아들의 뒷바라지에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야구부 감독, 코치의 폭언과 욕설에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며 ‘괜히 야구를 시켰나’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들의 실력이 늘자 A 씨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뒷바라지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괴롭힘을 당한 건 A 씨도 마찬가지였다. 야구부 감독 C 씨는 “점심을 챙겨달라”는 부탁으로 시작해 어느덧 성 상납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관계자는 “C 씨가 수시로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말로 A 씨를 압박했다”며 “A 씨의 휴대전화 메신저로 ‘엉덩이가 섹시하게 생겼다’는 등의 음란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C 씨는 성관계를 요구하는 듯한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며 A 씨를 당황케했다.
아들 때문에 꾹 참았던 A 씨는 C 씨가 급기야 아들을 야구부에서 쫓아내려하고, 다른 초교 야구부 감독들에게 “A 씨의 아들을 받지마라”는 상식 밖의 요청을 하자 서울 동작교육청 홈페이지에 사건의 전말이 담긴 게시물을 올렸다.
폭로의 파장은 컸다. 서울시교육청은 조사에 착수해 A 씨의 주장이 일부 사실임을 밝혔다. 해당 학교 역시 자체 조사 끝에 C 씨의 비위행위를 찾아냈다. 서울시교육청은 대한체육회 등 유관부서에 C 씨의 지도자 자격 정지 또는 박탈을 요청했고, 학교는 C 씨를 해임했다.
그렇다고 사건이 일단락된 건 아니다. A 씨는 “우리 아이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려면 이참에 사건의 진상을 확실하게 밝히고, 재발방지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C 씨를 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인 A 씨와 피고소인 C 씨를 모두 불러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C 씨는 성 상납 요구는 강력 부인했으나, 일부 사안에 대해선 잘못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 침묵 일관하는 협회
이 소식을 접한 야구인들은 “모두가 애써 외면하던 추악한 아마추어 야구계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학교 야구부 현장에서 성 상납 요구와 성희롱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던 대한야구협회가 어떤 입장을 나타낼지 궁금하다”고 혀를 찼다.
사실이다. 지난해 모 종합편성 채널은 아마추어 야구부의 다양한 비위를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 가운덴 지도자의 성 상납 요구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패널로 참석한 대한야구협회 고위인사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나.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야구계를 모함하지마라”고 목소릴 높였다.
하지만, 결국 의혹은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중학교 야구부원을 아들로 둔 D 씨는 “협회 홈페이지를 보면 학교 야구부의 각종 비위내용을 담은 게시물이 꾸준하게 올라온다”며 “그런데도 협회는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해 사실상 아마추어 야구계의 비리를 방조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협회의 공식 대응은 없다. 협회는 사건이 터진 뒤로도 별다른 재발방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 돈벌이에만 신경
아마추어 야구 현장이 썩고 있는데도 대한야구협회의 관심은 온통 ‘돈벌이’에만 쏠린 인상이다. 협회는 1981년 제3회 대회 이후 명맥이 끊겼던 야구대제전을 32년 만에 부활시켰다. 재학생들은 물론 각 고교 졸업생들이 함께 참가하는 야구제전을 협회는 “아마야구 부활을 위한 신호탄”이라며 거창하게 소개했다.
야구계 일부에서 프로선수들의 참가를 두고 “한겨울에 대회에 출전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나타냈지만, 협회는 프로선수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협회를 잘 아는 모 야구인은 “협회가 야구제전을 부활한 건 아마야구 부활이라는 거창한 목표도 있겠지만, 대회 개최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계산도 있던 것 같다”며 “새로운 협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학교 야구부 정상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돈벌이가 가능한 대회 창설에만 몰두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털어놨다.
개연성이 없지 않다. 지난 7월 협회는 KT와 아마야구발전 MOU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KT 이석채 회장은 “향후 10년간 아마추어 야구리그의 장기 스폰서로 총 60억 원을 지원하겠다”며 “KT의 자회사인 유스트림코리아가 협회 주관 경기를 중계하는 대신 협회에 중계권료를 주는 방식으로 6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야구계 안팎에선 “정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는 이 회장이 이병석 협회장(국회부의장)을 방패 삼으려고 60억 원 지원 카드를 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어쨌거나 11월 이 회장이 KT 수장에서 전격 사퇴하며 MOU는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한 야구인은 “협회가 KT와의 MOU를 계속 유지하려고 각종 대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많다”며 “야구제전도 그런 대회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