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이 정도 되면 반칙이다. 최고의 인기와 연기력으로 극찬 받고 있는 충무로 대세 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를 보면서 기자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뛰어난 배우가 감독으로도 이런 저력을 갖추고 있다니, 정말 이 정도면 반칙이다.
2013년 영화계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는 현직 배우의 감독 데뷔다. 박중훈이야 워낙 충무로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명배우이자 감독 데뷔도 오랜 기간 준비해온 영화인이다. 영화 역시 그의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는 영역인 연예계의 명암을 다룬 영화 <톱스타>였다. 오랜 배우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 박중훈의 저력이 드러난 영화였다. 전형적인 베테랑 배우가 만든 영화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하정우는 다르다. 그는 요즘 충무로 최고의 대세 배우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충무로 관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그는 <추격자> <국가대표> <황해> <러브픽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확실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자신의 티켓 파워를 증명한 요즘 가장 잘나가는 젊은 배우다. 본인이 직접 기획한 영화 <577 프로젝트 >에 이어 직접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만 해도 의문 부호가 더 많았다. 스타 하정우의 유명세에 기댄 그저 그런 영화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화 <롤러코스터>는 사실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수작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규모는 작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 <롤러코스터>는 실력파 영화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데뷔작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자신의 스타성을 버리고 소소한 아이디어에 충실한 영화라는 점이 더욱 돋보였다.
이 영화는 비행기를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행기의 거듭된 착륙 실패 장면에서 어느 정도의 CG가 들어가 있으며 일본으로 해외 로케이션을 다녀온 영화이기도 하다. 게다가 출연진도 탄탄하다. 이런 부분만 놓고 보면 스타성에 기댄 블록버스터급 상업 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촬영이 비행기 내부 세트에서 진행되는 등 실제 이 영화는 독립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비행기 비즈니스 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영화 <육두문자맨>으로 한류스타가 된 마준규(정경호 분)를 중심으로 신혼부부(이상원 이수인 분)와 신분을 숨긴 채 마준규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최규환 분), 그리고 스님(김병옥 분)과 타 항공사 회장(김기천 분)과 비서 등이 비즈니스석 탑승객이다. 그리고 일반 이코노미석 손님들도 몇몇 등장하며 비행기 승무원들과 조종사들도 주요 출연진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태풍이 몰아치는 악천후에 일본에서 출발해 김포 공항으로 향하던 비바 항공 비행기가 김포 공항에서 착륙에 실패한 뒤 인천 공항으로 향하지만 거기에서도 착륙에 실패한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가 연료마저 떨어져가는 상황이다. 결국 제주 공항으로 향해 어렵게 착륙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비행기가 착륙에 실패해 추락할지도 모르는 절체정명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가 엄습해오는 순간,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당황하고 혼란스럽다. 겉으로는 한류스타지만 비행공포증, 편집증, 결벽증 등이 있으며 복잡한 여자관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끝없이 이성을 탐하는 마준규가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톱스타라는 이미지로 포장돼 있던 마준규가 엄청난 공포 상황 앞에서 자기 본연의 모습을 내보이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스타라는 이유로 온갖 폼을 다 잡고 매너 있는 듯 가식을 떨지만 결국은 공포감에 바지에 오줌까지 지리고 마는 마준규, 그럼에도 위기 상황이 끝나자 여승무원의 연락처를 따내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이 우습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독 하정우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을 연출해낸 뒤 비행기에 탑승한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담아낸다. 추락 위기의 항공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블록버스터 영화와 달리 <롤러코스터>는 상황 자체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비행기를 탄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에 집중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를 놓지 않는다. 극단의 위기 상황에서 톱스타 마준규뿐 아니라 스님과 회장님, 기자와 신혼부부, 그리고 승무원과 조종사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은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위상을 내던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믹한 상황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제 감독 하정우는 본인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허삼관 매혈기>를 준비 중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 위화의 동명 소설을 세계 최초로 영화화하는 이 영화는 데뷔작 <롤러코스터>보다 더욱 상업적인 영화가 될 전망이다. 이제 배우 하정우는 물론이고 감독 하정우에게도 큰 기대를 걸고 그의 새 영화를 기다려 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