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4번 타자 이대호에 이어 최고 마무리 오승환마저 일본 무대에 서게 됐다. 오승환은 일본 명문구단 한신 타이거즈와 2년 9억 엔(약 91억 원)에 계약하며 한국을 떠나 내년 시즌부터 일본 마운드에 선다. 한국 야구계는 잇따른 슈퍼스타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에 덤덤한 반응이다. 그러나 일부 야구인은 “오승환의 일본 진출을 마냥 덤덤하게 봐선 안 된다”며 “한국 프로야구 슈퍼스타들이 연이어 일본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상황만 보면 정확한 지적이다. 일본 구단들은 본격적인 한국 선수 ‘쇼핑’을 준비 중이다.
임창용, 이대호가 일본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자 일본 구단들이 한국 선수 영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일본 기자는 “의외군요”하며 “만약 일본에서 오승환 같은 대형 마무리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팬과 야구계 모두 크게 절망하고,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신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자 많은 일본 야구팬은 그의 미국행에 대해 격려와 함께 아쉬움을 쏟아냈다. 일본 야구계도 “이러다 일본 야구가 메이저리그의 선수 공급처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일본 역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국 선수의 국외 진출에 큰 감흥이 없었다. 팬들도 응원 일색이었다. 그러나 노모 히데오,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에 이어 마쓰자카 다이스케, 구로다 히로키, 다르빗슈 유 등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차례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자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최정. 사진제공=SK 와이번스
일본 기자는 “한국 최고 투수 류현진이 LA 다저스에서 맹활약하고, 윤석민도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낸 것으로 안다”며 “이대호, 오승환마저 일본 야구에 빼앗긴 한국 야구는 조만간 ‘슈퍼스타 부재에 시달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술 더 떠 이 기자는 “미국이 일본을 선수 공급처로 생각한다면 이젠 일본이 한국을 주요한 선수 공급처로 삼는 느낌”이라며 “임창용, 이대호의 성공에 이어 오승환마저 NPB리그에서 성공한다면 일본 구단들은 한국 선수 영입에 올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그러한 움직임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취재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 일본 구단 스카우트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그는 내년 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하는 KBO(한국야구위원회)리그 선수들의 이름을 나열하고서, ‘이들 가운데 국외리그 진출 의사가 강한 선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친분이 두터운 일본 구단 관계자였지만, 그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했다. 기자가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자, 이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알아보겠다’며 ‘선수들의 에이전트가 누군지만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 역시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놀라운 건 이 구단은 이미 예비 FA 선수들의 세밀한 기록과 플레이 동영상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은 인터넷 강국답게 포털사이트와 각종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야구 중계를 볼 수 있다”며 “일본 구단 해외담당 스카우트 대부분이 이 사이트들을 이용해 KBO리그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본 구단들이 가장 주목하는 한국 선수는 최정(SK), 윤성환, 안지만(삼성), 장원준(롯데) 등이다. 이 가운데 최정은 ‘영입 0순위’로 꼽힌다. 몇몇 일본 구단은 최정을 ‘한 시즌 20홈런, 80타점 이상을 기록할 파워와 타점생산력을 갖춘 A급 타자’로 본다. 여기다 3루 수비마저 ‘충분히 일본에서 통할 실력’이라고 높게 평가한다. 특히나 2015년 최정의 나이가 ‘최전성기’인 28세라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만약 최정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많은 일본 구단이 그의 영입을 위해 분주히 뛸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 야구계는 “윤성환은 ‘제구가 좋은 선발’, 장원준은 ‘좌완 선발’이라는 게 매력”이라며 “몸값이 아주 높지 않다면 꽤 탐나는 선수들”이라고 평한다. 안지만은 ‘마무리가 가능한 수준급 불펜요원’이라는 게 강점이지만, 풀타임 마무리 경험이 없어 몸값에 있어선 오승환보다 한참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왼쪽부터 윤성환, 안지만, 장원준.
그러나 정민태, 정민철, 이종범, 구대성, 이병규 등 많은 한국 선수가 NPB리그에서 실패하거나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한국 선수들은 ‘몸값만 비싸고 실력은 그저 그런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하지만, 임창용이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마무리로 대활약하고, 2012년 이대호가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하자마자 그해 타점왕을 차지하며 한국 선수들은 ‘몸값을 하는 선수들’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제 오승환이 대성공을 거둔다면 일본 구단들의 한국 선수 영입은 유행이 될 전망이다.
두 번째는 몸값을 보전하기 좋다는 데 있다. 대개 한국 선수들을 영입한 구단은 한국 방송사들에게 홈경기 중계권을 팔게 마련이다.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맹활약할 때처럼 한 해 중계권료가 70억 원 이상을 넘진 않지만, 지금도 20억~30억 원은 꾸준히 받을 수 있다는 게 일본야구계의 중평이다. 설령 한국 선수가 크게 실패해도, 어느 정도 투자액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한신은 일본 광고대행사들과 접촉해 “한국 방송사에 홈경기 중계권을 팔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 방송사 관계자는 “한신으로부터 중계권 계약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하는 한 인사를 만났다”며 “그 인사로부터 ‘한신이 40억 원가량을 바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귀띔했다.
40억 원이면 오승환의 1년 연봉 3억 엔(약 30억 원)보다 높은 금액이다. 다시 말해 한신이 본전을 넘어 흑자를 원한다는 의미다.
박동희 스포츠 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