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 사진제공=KLPGA
올해도 남자 골프스타들의 해외진출은 계속됐다. 박상현(30), 김승혁(27), 허인회(26), 김형태(36), 최준우(34) 등이 내년부터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 출전권을 획득했다.
예년과 달라진 현상은 해외 무대에 ‘올인’하겠다는 선수보다 국내와 해외 투어를 병행하는 이중생활이다. 남자 프로골퍼들이 고달픈 ‘이중생활’을 선택하는 이유는 한 가지. 국내 투어가 활성화되지 않으면서 더 큰 무대로 나가 부와 명예를 얻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는 제자리걸음이다. 대회 수는 물론 상금도 큰 변화가 없다. 올해 KPGA 투어 상금랭킹 1위 강성훈은 4억 7891만 원을 벌었다. 2012년 김비오(4억 4400만 원), 2011년 김경태(4억 5177만 원), 2010년 김대현(4억 2661만 원)으로 4년째 비슷한 수준이다. 오히려 2009년 배상문(5억 6495만 원)과 비교하면 약 1억 원 정도 감소했다. 상금 1억 원 이상 수입 선수도 2010년 22명에서 2013년 17명으로 줄었다.
여자골프와 비교하면 심각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 KLPGA 투어 1위 장하나의 상금은 6억 8954만 원으로 강성훈보다 약 2억 원이 많다. 강성훈의 성적은 KLPGA 투어 3위에 해당한다.
좀 더 세분화하면 남자 프로골프의 열세가 더욱 뚜렷해진다. KPGA 투어는 3억 원 이상 수입 선수가 3명이고, 2억 원 이상 10명, 1억 원 이상은 17명에 그쳤다. KLPGA 투어는 3억 원 이상 수입을 올린 선수만 8명이고, 2억 원 이상은 19명, 1억 원 이상은 36명이나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투어가 열리지 않는 비시즌을 이용해 해외 투어에 출전해 상금을 쌓으려 이중생활을 선택하는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해 국내와 아시안투어를 병행한 A 선수는 “(지난 3월) 두 달 동안 해외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돌아왔는데 국내에서는 출전할 대회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멀리 인도네시아까지 가기로 결정했다”고 서글픈 현실을 토로했다.
남자와 달리 여자 프로골퍼들은 해외로 떠나는 숫자가 크게 줄었다. 오히려 국내 잔류를 선택하는 선수가 많아지고 있다. KLPGA 투어의 꾸준한 성장이 변화를 가져왔다.
KLPGA 투어는 올해 22개 대회(하나외환 챔피언십 제외)를 개최했다. 총상금은 약 140억 원에 달한다. 미국(28개 대회 4880만 달러), 일본(36개 대회 3160만 엔)에 이어 단일 국가에서 열리는 여자 골프투어 중 세 번째 큰 규모다.
KLPGA 투어에서 상금랭킹 5위 내에 들면 이듬해 US여자오픈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렇듯 KLPGA 투어의 위상이 높아진 점도 선수들이 국내 잔류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상금규모도 계속해서 커졌다. 2008년 처음으로 총상금 100억 원(118억 원)을 돌파한 뒤 7년 연속 100억 원을 넘겼다. 2012년엔 138억 원 규모까지 성장해 역대 최다 규모를 자랑했다. 투어가 안정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수들의 수입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1998년 상금왕에 오른 김미현(36·은퇴)이 1년 동안 번 돈은 6806만 원에 불과했다. 2013년 열린 대회의 최저 우승상금 1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올해 상금왕에 오른 장하나(21·KT)는 6억 8954만 원을 벌었다. 15년 전과 비교해 10배가 늘어났다.
장하나가 번 상금은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과 비교해도 적지 않다. 미 LPGA 투어의 상금왕 박인비(25·KB금융그룹)는 245만 달러(약 26억 원)을 벌었지만, 5위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은 127만 달러(약 13억 5000만 원), 7위 김인경(25·하나금융그룹) 112만 달러(약 11억 9000만 원), 9위 최나연(26·SK텔레콤) 92만 9000달러(약 9억 8000만 원)이다. 세금과 투어 출전 경비, 생활비 등을 제외하면 국내 선수들의 수입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도 비슷하다. 상금랭킹 4위에 오른 안선주(26)는 올해 9110만 엔(약 9억 4000만 원)을 벌었고, 7위 이보미는 8083만엔(약 8억 10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세금과 경비 등을 제외하면 손에 들어온 돈은 약 6억~7억 원 정도다.
해외 진출은 수입과 직결된다.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 남자 프로골퍼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여자 프로골퍼들은 국내에서도 안정된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잔류를 희망하고 있다. 수입이 늘어나는 KLPGA 투어에선 몇 년 전부터는 해외 투어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로 유턴하는 선수들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 KLPGA 투어 선수 중 해외 진출에 성공한 선수는 손에 꼽힌다. 톱 랭커 가운데서는 KG이데일리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미림(23·우리투자증권) 한 명뿐이다. 반면, 11월 열린 2014년 KLPGA 시드전에는 해외파들이 대거 출전했다. 일본에서 뛰었던 원재숙, 이종임 등을 비롯해 미국 LPGA 투어를 경험한 안시현, 김송희 등이 KLPGA의 문을 두드렸다.
선수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2011년과 201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했던 김하늘(25·KT)은 올해 미국 LPGA 투어 진출을 계획했다가 내년으로 미뤘다. 양수진(22)은 일본으로 무대를 옮길 생각이었으나 시즌 중 계획을 변경하고 국내 투어에 전념하기로 했다. 2013년 상금과 대상, 공동 다승왕을 수상한 장하나(21·KT)는 아예 해외 진출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 실력만 되면 무조건 해외로 떠났던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또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선 2~3차례 예선을 거쳐야 한다.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선 최소 1~2주 동안 KLPGA 투어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예선전이 주로 9~10월에 집중됐다는 점도 꺼리는 이유다. KLPGA 투어가 가장 뜨거울 시기다. 상금이 큰 대회가 많이 몰려 있고 타이틀 경쟁도 심할 때다.
장하나는 “해외 진출을 서두르지 않겠다. 그보다 국내에서 꾸준하게 정상에 오르는 게 1차 목표다. 해외 진출은 그 뒤 천천히 생각하겠다”라고 말했다.
주영로 스포츠동아 골프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