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민주노총 등 총 21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연금행동)이 ‘박근혜정부 기초연금 공약 파기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10대 공약의 이행 성적은 아직까지 미미하다. 첫 번째 공약인 ‘가계부담 덜기’는 채무자의 신용회복을 위해 빚 50%를 감면(기초수급자의 경우 70% 감면)해 주거나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 하도록 조정해 주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1조 5000억 원을 들여 ‘국민행복기금’을 출범해 채무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기금 설립 후 22만 2000여 명이 채무조정을 받았고 4만 1000여 명이 빚을 청산한 바 있어 공약이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학자금 대출자’와 관련해서는 관련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어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혜택을 받지 못해 ‘미완성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빠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년 2월 중에는 법이 개정돼 대학생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번째 공약인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은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재정 문제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애초 무상보육 예산으로 ‘20% 포인트 인상’된 국고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최근 은근슬쩍 ‘10% 포인트 인상’으로 급선회했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초 여야가 국회 상임위에서 합의한 20% 포인트 인상 개정 법안을 정부와 여당이 막판에 파기한 터라 비판은 더욱 거셌다.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무상보육 국고보조율 10% 포인트 상향조정은 지방정부에 예산 부담을 떠넘겨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재정을 더욱 옥죄는 처사”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결국 재정이 허약한 지방정부의 예산 부담이 늘어나는 탓에 무상보육의 실현 가능성은 ‘시계 제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한길 대표를 비롯 민주당 의원, 당직자 등이 9월 26일 ‘공약파기 거짓말정권 규탄대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축소에 항의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네 번째 공약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공약’은 대선 TV토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유명 공약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번 걸리면 가계가 휘청거리는 심장병, 암, 희귀난치병, 중풍 등 4대 중증 질환에 대해 100%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공약은 그대로 대표 공약에 반영됐지만, 구체적인 보장 안이 마련되지 않아 유야무야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자들의 부담이 가장 큰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에 대한 보장 안이 제외된 것이 무엇보다 컸다. 결국 해당 공약은 ‘후퇴 논란’까지 겪으며 지지층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노동 관련 정책이 담긴 ‘일자리 늘리기 및 지키기’, ‘근로자의 삶의 질 올리기’ 등 다섯 번째와 여섯, 일곱 번째에 달하는 공약 실적은 시민사회로부터 가장 비판받는 현안 중 하나다. 사회공공연구소 이승우 연구원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 공약은 이전 정부 공약의 재탕 삼탕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자리 확대도 실효성이 없는 단시간 근로자 확대에 지나지 않고 무엇보다 노사 관계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공약 전면에 내세웠으나 최근 철도 파업만 보더라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회보험을 국가가 100%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50% 축소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시한이 삭제되고 예산이 잡히지 않음으로써 ‘축소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이승우 연구원은 “노동시장 공약으로만 보면 30점, 노사관계 공약으로만 보면 40점 정도를 주고 싶다”며 “지난 1년간 노동 공약은 낙제점에 불과했다”라고 혹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기금 지원현장을 방문한 모습. 기금 설립 후 4만 1000여 명이 빚을 청산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 관련법이 국회에 계류돼 상당수 대학생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이밖에 마지막 공약인 ‘지역균형 발전과 대탕평 인사’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오래도록 지켜봐야 하는 지역균형 발전 공약에 비해 대탕평 인사는 곧바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 2인자’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 사정, 권력기관 핵심에 경남과 부산 출신들이 대거 포진함으로써 대탕평 인사 공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공공기관장 출신지역을 분석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정부요직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호남 인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며 “국민대통합의 출발점인 대탕평 인사는 사라졌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10대 공약 중 ‘가계부담 덜기’와 ‘국민안심프로젝트 추진’을 제외한 나머지 공약은 예산 문제로 삐걱하거나 원안이 파기되는 등 공약 진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애초 공약 설계 자체가 재원 확보 마련에서 취약점을 보였던 게 사실”이라며 “1년이 지난 현재 공약에 대한 예산이 반영된 점을 봤을 때 전체적인 국정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향후 공약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주장한 원칙과 소통을 얼마나 발휘하느냐가 열쇠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