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논란의 시작은 박 대통령 당선 1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이정현 수석의 브리핑이었다.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운을 뗀 이 수석은 당선 1주년을 맞은 박 대통령에 대한 외부의 평가 가운데 “가장 억울한 게 불통 대통령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박 대통령 평가 기사를 쓰고 있는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푸념을 늘어놓고 하소연하는 분위기였지만, 발언이 계속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말로 마음속에 억울함이 켜켜이 쌓여 있었던지 이 수석은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격앙돼 갔다고 브리핑을 들은 사람들이 전했다. 이 수석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브리핑을 마치면서 기자들에게 “저, 이거 흥분해서 말한 것 아닙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평가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기자들에게 화를 낸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에서는 야당은 물론 무당파 국민들도 자극할 만한 말들이 적잖게 나왔다. “한 사람밖에 없는 대통령이 국민 4800만 명의 귀에다 대고 소통하는 게, 전부 청와대 불러 밥 먹이는 게 소통이 아니다”, “(국가정보원 직원 댓글 사건에 대해)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과하라, 국정원장 짤라라, 대통령 하야하라 이러면서 그렇게 안하면 불통이냐”는 말들이 그것이다.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심지어 “창조경제에 대해서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고까지 말했다.
다음날과 그 다음날에도 이 수석의 억울함 호소는 계속 이어졌다. 박 대통령이 당선 후 1년 동안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편집국장과 논설실장, 정치부장까지 다 초청해서 간담회를 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억울하다고 말한 것이다. 18일 브리핑에서의 발언이 하소연 와중에 흥분해서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이 수석의 이 같은 발언이 연일 실명으로 보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발언 내용은 청와대 관계자들은 물론 박 대통령의 인식도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생각 역시 이 수석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게 사실이다. 성장률과 고용률 등 경제지표가 일부 호전되기는 했지만 시장에서 변화를 감지하기엔 아직 미미한 수준이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축소·후퇴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고위 공직자와 내정자들의 잇단 낙마, ‘윤창중 사태’ 등 인사 분야는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고 파생적으로 국민통합 역시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외교·안보 분야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대변되는 대북정책이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공개적인 지지를 얻고, 이에 힘입어 결국 개성공단 정상화로 이어졌다는 점이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 맞대응해 한국이 새로운 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했는데, 민감한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이 매끄럽게 이뤄졌다는 점도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의 자체평가는 한참 다르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선 “역대 정부 중 최고”라는 말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경제 분야의 경우도 현상유지에 성공했다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성과라는 게 청와대 내부의 평가다.
경제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환경 면에서 2013년은 최악의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데다 이명박 정부 당시 세입 과다계상으로 인한 세수부족 사태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도 미미한 수준이나마 경기를 회복세로 돌려놓은 것은 상당한 성과”라며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각종 규제개혁 법안들이 처리된다면 투자 환경 개선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분야의 축소·후퇴 지적, 개혁 미흡 지적에 대해서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출신의 한 청와대 행정관은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화’를 내걸고 골목상권 보호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비리 척결,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공기업 개혁 등을 뚝심 있게 추진해오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이전 정부들이 알면서도 건드리지 못했거나 반발을 우려해 건드리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부정적 평가에 대체로 공감을 표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는 인사다. 비서실장이 허태열 전 실장에서 김기춘 실장으로 바뀐 뒤에도 인사위원회가 유명무실하기는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철저한 검증을 한다는 이유로 남들이 지쳐 나자빠질 때쯤 돼야 인사 발표가 나곤 한다”며 “그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우리끼리도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 ‘이 사람은 왜 임명된 거냐’는 반응을 주고받을 정도로 황당한 인사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성과에 대한 내·외부 평가의 괴리는 그 자체로 비정상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밖으로부터의 비판을 청와대가 제대로 받아 안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한 정치평론가는 “최근까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게 원인이 아닌가 싶다”면서 “자칫 높은 지지율이 청와대와 여권에 칼날이 돼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지지율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외부의 비판과 평가에 귀를 열고 더욱 예민하게 반응해야만 남은 4년 동안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그 지지율도 최근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