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세습 정권이 3대 김정은에 이르도록 건재를 과시하는 배경에는 지배세력들 간의 촘촘한 카르텔이 있다. 로이터/뉴시스
지난 2010년 9월, 제3차 노동당대표자회의는 북한 현대사의 주요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 현 국방위 제1위원장이 이 자리에 참석하며 사실상 3대 세습 체제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1980년 6차 당대회 현장에서 김정일이 아버지인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극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실제 북한은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 이후 3대 세습 체계를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북한 정권이 들어선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정권의 유일한 중심은 김일성 일가의 직계 및 방계 혈통들이다. 북한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백두혈통’이라 칭한다. 김일성 혁명의 산지가 곧 백두산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수령은 절대적이며 신성불가침한 존재일 뿐 아니라 부자세습체계가 이어져야 인민의 승리와 영광이 보장된다’는 북한의 ‘수령론’에 따라 이들 백두혈통 세력들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북한 판 ‘왕권신수설’인 셈이다.
특히 김설송은 윗대의 고모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이상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단순한 권력 비호의 중심을 넘어, 20년 당 경력을 토대로 당과 군의 컨트롤타워까지 도맡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일요신문> 1128호 보도).
최근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숙청 및 처형 등 일련의 과정은 정권 초기 의문부호를 낳게 했던 김정은의 권력이 선대의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력하고 건재하다는 것을 대내외로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한 대북소식통은 이를 두고 “장성택의 죽음은 북한이라는 체제에서 백두혈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2인자 장성택일지라도 직접적인 백두혈통이 아닌 탓에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한때 김정은 후계세습에 반기를 들었던 고모 김경희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혈통 덕이 크다.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 등 곁가지 세력(백두혈통 방계세력)들이 세습과정에서 권력중심부에서 밀려난 사례는 있었어도 처형된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 대표적 케이스가 장성택 사후 북한의 2인자로 급부상한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다. 알려졌다시피 최 국장은 빨치산파 핵심이었던 고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심지어 그의 모친으로 알려진 김철호 역시 빨치산 여전사였다. 최 국장은 빨치산 ‘성골’ 2세대인 셈이다.
최현은 항일투쟁시기 당시 빨치산의 막내로서 김일성이 가장 총애했던 전사로 알려져 있다. 최 국장은 이러한 배경 하에 김정일 시대 초고속승진을 거쳐 현재는 북한의 최대 권력기관인 군의 총책이 됐다. 김정일이 생전에 유훈을 통해 아들의 세습 체계 작업에 최룡해를 직접 언급했을 정도다.
장성택과 이권 다툼을 했다고 전해지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역시 빨치산 2세대다. 오극렬은 빨치산 전사 오중성을 아버지로 두고 있으며, 항일전쟁시기 김일성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오중흡과는 5촌지간이다. 오극렬은 한때 권력의 중심부에서 사라진 듯 보였지만, 최근 김정은 시대 장성택의 몰락 후 대외 활동을 다시금 넓히고 있다. 특히 그는 군의 이권 사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세습시기 외부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오일정 중앙위 군사부장은 빨치산 전사이자 한때 군 최고실세였던 오진우 인민군 원수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오 부장은 1976년 도끼만행사건 당시 김일성대학을 1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자원입대한 군 엘리트다. 본격적인 3대 세습시기였던 2010년께 중장(국군 계급 체계로는 소장)으로 승진하며 중앙위 군사부장을 꿰찬 그는 불과 1년 만에 인민군 상장(중장)으로 한 단계 더 승진했다.
여기에 주목할 것은 이미 김정은 시대에 들어 빨치산 3세대가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다. 빨치산 2세대인 오극렬의 아들 오세현 조선자원투자개발 중국대표부 대표는 북한 세습귀족의 사조직으로 알려진 ‘봉화조’의 핵심 멤버다. 오세현은 이미 김정일 시대 때부터 북한의 불법적·합법적 대외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얼마 전 국상을 치른 빨치산 2세대 고 김국태(김책 내각 부수상의 아들)의 딸인 김문경은 현재 당 국제부 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인자 최룡해의 아들 최준 역시 현재 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경대혁명학원은 1947년, 김일성의 부인이자 자신 역시 빨치산 전사였던 김정숙이 항일투쟁시기 목숨을 잃은 빨치산 전사들의 유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세운 학교로 당시 이름은 평양혁명가유가족학원이었다.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58년에 이르러서였다. 1980년대 이후엔 핵심 비호세력 확대 재생산을 위해 빨치산 전사 후손 이외에 애국열사 자녀들까지 입학 기회를 넓힘으로서 그 졸업생들은 현재 북한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 대북전문가는 만경대혁명학원에 대해 “혹자는 북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은 김일성대학이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엘리트 교육기관은 만경대혁명학원”이라며 “김일성대학은 군 우수자원을 포함해 일부 후천적 노력을 토대로 입학이 가능하지만, 만경대혁명학원은 출신성분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다. 북한을 움직이는 것은 김일성대 학맥이나 아니라 만경대 학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재 최룡해와 함께 신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군·당 인사의 상당수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다. 장성택의 처형이 결정된 ‘삼지연 회의’에 참여했던 핵심 멤버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김평해 당 간부부장, 김기남 당 비서 등이 이곳을 나왔다. 북한의 핵심권력기관에 포진해 있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 간부들의 분포비율만 본다면, 만경대 파워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다.
<일요신문>은 올해 만경대혁명학원을 연구한 국내 북한학자들의 논문들을 토대로 만경대 출신 간부 분포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명단은 북한 정권이 최근 공식 발표한 최종명단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만경대 출신인 장성택 등 일부 이탈 세력이 포함됐다. 특히 이 명단을 토대로 본다면, 당 중앙군사위, 국방위 등 군사관련 기관에 만경대 출신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표 참조).
장성택 제거 이후에도 여전히 김정은의 권력기반과 체제운영에 의문을 나타내는 일각의 시각이 존재하지만, 반세기 동안 ‘백두혈통’을 떠받쳐온 ‘빨치산’과 ‘만경대’라는 양대 인적네트워크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버티고 있다. 이는 향후 김정은 정권의 건재와 연속성을 예상케 하는 현실적 대목이기도 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