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3일 벤츠는 ‘자동차 없는’ 자동차 CF를 유튜브에 올렸다. 벤츠 자동차 대신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닭. 이 광고영상을 보면 사람이 밑에서 닭의 몸통을 잡고 이리저리 춤추듯 움직여도 닭의 머리는 마치 핀으로 고정된 듯 흔들림이 없다. 닭은 몸이 흔들릴 때 균형을 잡기 위해 머리를 움직이지 않는 독특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벤츠 자동차의 안정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닭의 머리를 광고에 절묘하게 접목시킨 것이다.
벤츠와 재규어의 광고 신경전이 점입가경이다. 벤츠가 ‘닭 잡아 먹은 재규어’에 대한 화답으로 재규어를 벤츠 광고에 등장시키며 점잖게 한방 먹였다는 평이다.
사실, 벤츠는 이보다 10일 앞서 ‘어떻게 매직 바디 컨트롤이 작동하는가’라는 제목의 광고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었다. ‘매직 바디 컨트롤’은 벤츠가 자랑하는 첨단 주행안정 시스템. ‘더 뉴 에스클래스’(The New S-Class) 시리즈 중 최근에 나온 6세대 모델에 장착돼 있다. 이 영상에는 차량 앞유리에 달린 두 개의 스테레오 카메라가 도로를 탐지하고, 요철에 따라 서스펜션의 높이를 자동으로 조절해 안락한 주행감을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획기적인 장치를 소개한 영상이었지만 유튜브에서 반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벤츠는 이른바 ‘치킨 CF’를 후속 영상으로 내보냄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내심 경쟁 브랜드로 여겨온 벤츠의 ‘광고 대박’이 은근히 배 아팠던 것일까. ‘재규어 USA’(미국 법인)는 지난해 12월 17일 전례 없는 패러디 CF 광고를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제목은 ‘재규어 대 치킨’ 패러디. 38초짜리 이 영상은 연구원처럼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닭을 들어 보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벤츠 광고와 마찬가지로 몸을 흔들어도 고정된 듯한 닭의 머리. 하지만 잠시 남자가 한눈을 파는 사이, 재규어가 닭을 순식간에 낚아챈다. 닭은 사라지고 깃털만 날리는 가운데 재규어가 포효하는 모습. 이윽고 ‘매직 바디 컨트롤? 우리는 고양이 같은 반사신경이 더 좋다(We prefer cat-like reflexes)’는 문구와 재규어 로고가 순서대로 화면에 나타난다. 안정감을 강조한 벤츠의 광고를 비꼬며 재규어 특유의 순발력과 스피드를 자랑한 셈이다.
노이즈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까. 재규어의 패러디 광고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불과 1주일 만에 조회 수 181만 건을 돌파할 정도로 유튜브에서도 화제가 됐다. 자연히 세간의 시선은 패러디를 당한 벤츠에게로 쏠렸다. ‘재규어 대 치킨’ 영상이 뜬 지 이틀 후인 12월 19일 벤츠는 의미심장한 한 장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은 좁은 숲속 길을 지나던 재규어가 질주해오는 벤츠 자동차를 보고 얼어붙어 있는 듯한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사진 좌측 위쪽에는 ‘고양이 같은 반사신경으론 충분히 빠르지 않기 때문에. 더 프리세이프 브레이크(The PRE-SAF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리세이프 브레이크는 전방의 물체를 감지해 자동으로 멈추는 벤츠의 첨단 제어장치. 결국 벤츠의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기술이 재규어를 살려준다는 의미인 셈이다. 벤츠의 여유를 보여주듯, 사진 위에는 ‘궁금한 이들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의 재규어 패러디 광고까지 링크해 놓았다.
해외 언론에선 이 사진을 두고 ‘벤츠가 재규어에게 점잖게 한 방을 먹였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재규어가 진 것일까. 패러디 광고의 흥행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벤츠 광고를 볼 때 재규어도 함께 떠올리게 됐다. 게다가 앞으로 재규어가 반격에 나선다면 또 한 번 브랜드 이름이 화제의 한가운데 오르게 될 것이다. 두 프리미엄 자동차의 장외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