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은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 민감한 소재를 다뤄 우려의 시선을 받았지만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진은 <변호인> 스틸 컷.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은 유독 험난한 제작과정을 거쳤다. 주인공 송우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헌정영화다” “정권에 반기를 드는 영화다” “투쟁영화다”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작을 결정하고도 투자부터 캐스팅까지 뭐 하나 수월하게 진행된 것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우 송강호가 캐스팅되고 촬영은 시작됐지만 워낙 민감한 소재라 현장은 늘 긴장감이 맴돌았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무려 개봉 3주 전부터 시사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통상 일주일 전 시사회를 하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제작사 측은 영화 그자체가 아닌 정치적인 논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보고 말하자”며 조기 시사회를 결정했다.
양우석 감독은 “다양한 비판이 있는 건 잘 알고 있다. 그 분들이 영화를 보고 판단해주면 좋겠다. 영화를 보시고 같이 얘기를 나누면 어떨까 싶다”며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 감독의 말은 개봉 전부터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변호인>을 둘러싸고 한바탕 온라인 전쟁이 벌어진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각종 포털사이트 영화코너가 격전지가 됐는데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회원들은 무더기로 ‘0점’을 주는 방식으로 일명 ‘별점테러’를 앞세워 공격했다. 때문에 <변호인>은 개봉 직전까지 평점이 2점대 초반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에 발끈한 진보성향의 네티즌들까지 가세, <변호인>에 수천 개의 옹호 댓글을 달며 한바탕 이념전쟁이 펼쳐졌다.
한번 불붙은 논란의 불씨는 도무지 꺼질 줄을 몰랐고 2013년 12월 18일 <변호인>이 개봉하자 갈등은 극에 달했다. “보수 세력이 영화관에서 <변호인> 티켓을 100장씩 무더기로 예매했다 상영시작 10분 전에 한꺼번에 취소하는 방식으로 일반인 관람을 방해하고 관람객 수 하향을 조작하고 있다.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하자 직원을 폭행하는 등 난동까지 부렸다”는 루머까지 떠돌아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연출됐다. 하지만 서울의 주요 극장 관계자들은 “그러한 사실도 없으며 시스템적으로도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변호인>을 둘러싼 ‘좌우 이념 대결전’은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했고 아울러 입소문을 내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또한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까지 잇따라 단체관람을 하며 <변호인> 성공에 힘을 보탰다. 물론 문성근 민주통합당 전 최고위원이 영화 포스터 속 송강호 얼굴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해 역풍을 맞는 등 과한 ‘충성심’이 역효과를 부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변호인>은 시대적인 상황과 개봉 타이밍도 절묘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학가에서 번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서부터 철도파업 등과 얽혀 공안정국이라 평가받는 현실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그리 낯설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색깔을 지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정치색을 뺀 덕분에 오늘의 현실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도 도움이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좌석점유율이 높으면 스크린 수는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 <변호인>은 그 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본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80%가 넘는 압도적인 좌석점유율을 기록했으니 당분간 큰 이변이 없는 한 스크린 확보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여 ‘변호인 열풍’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