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 추징금 징수 시한 만료를 앞두고 검찰과 연희동측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 위쪽은 전두환씨의 연희동 자택, 아래쪽은 서초동 검찰청사 전경. | ||
3년 버티기설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현재 전씨의 마지막(?) 남은 재산은 연희동 자택의 별채. 이번에 이 별채를 강제 처분하고 난 뒤, 향후 3년만 버티면 공식적으론 추징 시효가 만료된다.
연희동으로선 이 기간만 보내면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1천8백억원의 재산추징금 속박에서 완전 자유로워진다는 것. 검찰에선 “절대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연희동측에서는 “오로지 법대로 할 뿐”이란 말로 즉답을 피하고 있다.
뒤늦게 검찰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울지검 총무부는 법원에 전두환씨의 추징금 징수를 위한 재산명시 신청을 내고, 연희동 별채를 경매 처분하기로 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오는 5월 만료될 것으로 알려진 추징 시효(2000년 5월에서 2차 연장된 시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별채 처분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만료시한은 다시 3년 동안 연장되기 때문.
지금까지 전씨의 추징 시효는 두 차례에 걸쳐 연장되었다. 검찰은 지난 1996년 전씨의 숨겨진 재산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 97년 4월 당시 대법원은 전씨가 재임기간 중 재벌들로부터 받은 돈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를 적용, 2천2백5억원을 국고에 환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때 전씨는 가진 돈의 전부라며 3백12억여원을 내놓았다.
만료 시점인 지난 2000년 검찰은 전씨의 벤츠승용차와 용평콘도 회원권 등을 경매 처분해 2억여원을 추가로 추징하며 다시 시효를 3년 연장했다.
이는 기간을 더 연장해서라도 숨겨진 재산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검찰이 찾아낸 것은 그동안 단 한 건도 없다. “찾으려는 노력조차 없었던 것이 아니냐” “여론 눈총 피하기로 시효만 연장시키는 시간벌기 차원 아니냐”는 등의 의심을 피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전두환씨. | ||
한편으로는 전씨측이 곧 법원에 제출하게 될 재산명시에 대해서도 애써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악화된 여론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라도 뭔가 추가된 목록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검찰의 기대 차원에서 그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전씨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는 <일요신문>과 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목록을 작성하지도, 생각해본 바도 없다. 내용은 그때 가 봐야 알 일이다. 법에 정해진 대로 충실히 적어 제출하면 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재산에) 변화된 내용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얼마 전 한 사석에서 “지난 YS정권과 DJ정권에서 그토록 철저히 수사했는데도 나오지 않지 않았느냐”며 사실상 추가로 밝힐 내용이 없을 것임을 암시한 바 있다.
전씨는 이번 재산명시 신청제도의 첫 대상이 된다. 지난해 민사집행법 제정으로 가능해진 ‘재산명시신청’은 검찰이 법원에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하는 제도.
만일 법원에 제출한 재산명시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그리고 현행법상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 출두해야 하기 때문에 전씨는 6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도 현재 제기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항고하고 다시 재항고하는 등으로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은 없다”고 밝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르겠다는 뜻을 전했다.
법원에서도 원칙론을 강조했다. 서울지법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재산명시신청을 받아들일 것이며 조만간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렇게 되면 전씨측에서는 현재의 재산내역과 변동상황 등을 법원에 제출해야 하며, 전씨 본인이 직접 법정에 출석해 판사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씨의 직접 법정 출석 여부’에 대해서는 연희동측도 고심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변호사는 “아직은 정해진 바 없다”라고 밝혔다.
결국 현재의 상황에서는 전씨측이 자발적으로 내놓는 추가 재산 목록의 내용만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서도 별다른 내용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검찰은 주어진 3년 안에 다시 한 번 전씨와 연희동 주변을 철저히 뒤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3년만 버티면 전씨 재산 추징은 사실상 끝”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이다.
▲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경축연에서 노무현 대 통령과 전두환씨 부부가 건배하고 있다. | ||
지난 3월 말 양 부장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최찬묵 신임 총무부장은 “일단 3년간 시효 연장을 한 다음에 재산을 찾아낼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지난 5년간 못찾은 것을 이제 와서 찾을 수 있겠느냐” “사실상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등의 질문에 “지금껏 은닉 재산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 재개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한 형편이다. 지난 96~97년에 의혹이 제기된 전씨의 무기명 장기채권과 일련번호가 이어지는 채권, 현금 등을 포함해 1천8백억원대의 비자금 내용은 벌써 6~7년이나 더 지나 더욱 추적이 어렵게 됐다. 특히 만기가 지난 채권은 본인 명의로 다시 돌리지 않는 한 압류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전씨의 재산이라고 단정짓지 못한다.
또한 97년 말~98년 초 당시 사채 시장에서는 전씨의 무기명 채권이 할인되어 현금화되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히 확산, 검찰에서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벌써 현금화되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설사 가족과 측근 등 타인 명의로 은닉한 재산이 밝혀진다 해도 재판을 통해 그것이 전씨의 소유였다는 정황증거를 입증해야 한다는 고충도 뒤따른다. 그래야만 강제 추징할 수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가회동 빌라의 실소유주가 한때 전씨의 셋째 며느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전씨의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의혹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다.
특히 구권화폐 사기 사건이 터질 때마다 “5공 최고 실세가 숨겨놓았던 구권화폐가 사채시장에서 암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그 실세로 전씨와 측근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정작 구권화폐의 실체에 대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최근 들어 급격히 사세를 확장하는 등 ‘출판계의 큰손’으로 통하는 장남 재국씨의 사업자금 출처 역시 끊이지 않는 의문사항이이지만, 전씨측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개인 파산자로 선고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돌아 주목을 끌고 있다. 개인 파산 선고는 법원이 ‘재산을 은닉했다고 의심되는 채무자들이 본인 명의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추징 의무를 이행치 않을 때 내릴 수 있는 조치’다.
법원 관계자는 “만일 검찰의 ‘파산 선고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전씨는 신원증명서에 ‘파산자’로 기재되는 것은 물론 금융거래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공무원 담임권과 주식회사 임원 등 각종 직업 자격이 박탈되며, 특히 주거 및 통신 제한까지 규정하고 정상적인 사회 생활은 불가능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도대체 검찰 누가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라며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정말 검찰에서 그런 말을 했느냐. 누군지 말해 줄 수 있느냐”라며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