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준비금제도가 대선 당시 ‘퇴직금’ 개념에서 ‘적금’ 개념으로 돌변하며 공약 번복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2012년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특수전교육단을 방문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던 공약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이다. 국방부는 다른 군 관련 공약과는 달리 유독 희망준비금에 대한 공약 이행 계획만은 인수위 업무보고에 포함시키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희망준비금 공약의 번복은 이미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부터 잉태되었던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젊은 층의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곧 드러날 거짓말을 했던 것”이라는 격앙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희망준비금은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국방부 내부에서 ‘군인 봉급 2배 인상’과 ‘희망준비금’을 동시에 추진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 특히 “제대 군인 1인당 희망준비금 금액이 대학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인 ‘300만~400만 원’ 정도가 돼야 한다”라는 인수위 측 입장을 국방부는 ‘무리수’로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그렇게 유야무야된 공약은 박근혜 정부 1년을 넘어갈 즈음, 새로운 모습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국방부가 2013년 12월 27일 개최한 ‘2013년 병영문화선진화 종합평가회의’에서다. 한 해 추진성과를 분석하고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 등을 새롭게 반영한다는 취지로 열린 회의에서 국방부는 “2014년부터 희망준비금 제도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게 된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추가적인 단서가 붙었다. “병사의 월 급여 중 일부 금액을 ‘적립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에는 ‘퇴직금’ 개념에 가까웠던 희망준비금이 순식간에 ‘적금’ 개념으로 돌변한 셈이다.
이 소식을 접한 여론은 삽시간에 들끓었다. 특히 군 입대를 앞둔 네티즌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몇몇 네티즌은 “‘새뱃돈 엄마가 가지고 있다. 예금통장에 넣어줄게’랑 뭐가 다른가?”, “그냥 군인 월급으로 적금 넣는 건데 왜 국방부가 선심 쓰는 척하나?”, “국방의무에 월급 강제적립도 들어가나”, “적금 넣고 나면 군인들 초코파이 사먹을 돈도 없다” 등 정부의 방침에 촌철살인으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적금 형식으로 시행하는 희망준비금은 현재 군인 월급을 따져봤을 때 현실에 안 맞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이러한 네티즌들의 지적은 사실일까. 2013년 현재 군인 월급은 △이등병 9만7800원 △일병 10만 5800원 △상병 11만 7000원 △병장 12만 9600원선이다. 정부는 올해 군 봉급이 15% 오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 2014년도 군인 월급은 △이등병 11만 2500원 △일병 12만 1700원 △상병 13만 4600원 △병장 14만 9000원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문제는 희망준비금을 약 200만 원 준다고 가정할 시 군 복무 기간이 21개월인 점을 감안했을 때 월 최소 ‘9만 원’ 이상은 적금에 부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등병이 적금을 넣는다고 한다면 월 ‘2만 원’가량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국회 국방위 소속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거는 그야말로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이고 또 조삼모사라고도 할 수 있는 발상”이라며 “사병들의 봉급이 턱 없이 부족하고 용돈으로도 부족해서 집에서 타다 쓰는 실정인데, 집에서 계속 돈 타다 쓰라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5월 한국국방연구원이 분석한 ‘2012년 국방예산 분석·평가’에 따르면 병사들의 월평균 지출액은 ‘12만~14만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병사들은 이 중 68%가량을 외출·외박 여비, 간식·담배 등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 만족도 역시 ‘급여가 부족하다’고 느낀 병사가 전체의 80%의 달해 월급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상황에서 적금 방식의 희망준비금을 도입한다면 병사들의 불만은 더욱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병사들의 높은 불만이 예상되는 상황임에 반해, 정부의 희망준비금에 대한 재정지원 계획은 현재까지 미지수다. 정부는 ‘군인 봉급 2배 인상’에 대한 공약을 먼저 이행한 뒤에야 희망준비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봉급 2배 인상에 대해 기한을 잡은 시점은 2017년.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거의 마무리될 시점이라 재정지원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2017년까지 봉급을 두 배로 인상하려면 매년 20%씩 인상해야만 하는데 내년도 인상률이 15%다. 재원이 충분치 않으니까 불가피하게 그렇게밖에는 올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군인 봉급 인상 공약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희망준비금 재정 지원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제도의 ‘강제성’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단 희망준비금은 의무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경우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강제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의무적인 성격의 군 내부 분위기상 희망준비금 제도는 사실상 병사들을 상대로 ‘반강제’로 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높다. 군 인권센터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대표 공약이기에 정부로서는 이 제도를 실패하게 두진 않을 것”이라며 “기금을 늘리기 위해 병사들을 상대로 반강제적으로 희망준비금에 가입하라고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결국 희망준비금 논란은 비현실적인 방안과 재정지원 결여, 무리한 추진 등으로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란이 확산되자 국방부는 지난 3일 ‘입장발표’ 자료를 내고 “국고 지원이 어려운 만큼 희망준비금 지급을 단계화해 추진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1단계로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병 봉급을 2배 인상하면서 희망자에 한해 병 봉급 인상분 중 일부를 적립해 희망준비금으로 지급하고, 2단계는 재정여건을 고려해 정부지원금을 추가해 지급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혀 한 발짝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 실망감만 안겨준 희망준비금이 군인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지금 붓는 것도 다 깨는 판인데…
희망준비금과 비슷한 적금은 이미 군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군 현역병인 B 병장(27)은 “입대하고 훈련소에 있으면 은행이 와서 적금 들라고 얘기를 한다. 한 달에 1만~4만 원까지 자기가 내고 싶은 대로 넣을 수 있다고 해서 거의 가입하긴 하는데, 지금 주변 군인들보면 적금 꾸준히 하는 애들 한 명도 없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대부분 복무하면서 저절로 해약되는 것”이라며 “1만~4만 원도 힘든데 어떻게 9만 원을 적금할 수 있겠느냐.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고작 월급 2만 원 올려주고 생색은 있는 대로 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로 신한, 국민, 우리, 하나은행 등 국내 대표은행들은 이미 ‘진짜사나이적금’, ‘나라사랑적금’, ‘베레모적금’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한 적금 상품들을 하나씩 내세우고 있다. 이렇듯 다른 적금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데 굳이 희망준비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팽배한 것이다. 이에 국방부 관계자는 “적금 이율은 시중금리보다 높고 이자소득세가 면제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아직 확정된 안은 아니지만 희망준비금을 적립해주는 시중은행을 공개 모집할 예정”이라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희망준비금이라는 명목으로 시중은행 한 곳이 적금을 독점하는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높다. 희망준비금 적금 금액만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비리의 위험성이 높고 결국 은행의 배만 불려주는 효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도대체 이런 발상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수천억 원에 가까운 수신고를 올릴 어떤 은행뿐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