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123분인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인 초반 60여 분과 가족 영화인 후반 60여 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영화가 정통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돼 있는 것은 연말 극장가를 겨냥한 흥행 전략일 뿐, 실제로 이 영화 장르는 가족 영화다. 초반 절반가량이 로맨틱 코미디인 까닭 역시 결혼을 통해 가족이라는 원래의 주제에 더 다가가기 위해서다.
우선 줄거리를 보자. 순진한 모태솔로 팀(돔놀 글리슨 분)은 성인이 되는 날 아버지(빌 나이 분)로부터 엄청난 가문의 비밀을 듣게 된다. 이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무제한적인 시간 여행은 아니다.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불가능하며 과거 역시 자신의 기억 속 한 순간으로만 갈 수 있다.
이런 절대적인 능력은 모태솔로인 팀에게도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기적을 가능케 해준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여성 앞에서 뭔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을지라도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 문제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면, 또 사랑하는 여성이 뭐를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를 알게 된 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여성의 마음을 빼앗는 게 얼마나 손쉽겠는가.
그렇다고 팀의 사랑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고향을 떠나 런던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모태솔로이던 팀은 사랑스러운 여성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만나 첫 눈에 반하지만 시간여행으로 인해 그녀와의 만남이 모두 없던 일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고 마음을 빼앗기 위해 팀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사랑을 이뤄낸다.
이렇게 팀과 메리가 결혼까지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가 영화의 전반부에 해당된다. 타임슬립을 적절히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사랑 영화다. 문제는 이들이 결혼에 성공했음에도 아직 러닝타임이 1시간가량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남겨진 한 시간을 영화 홍보사 측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사랑이 완벽해 질수록 팀을 둘러싼 주변 상황들은 미묘하게 엇갈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어떠한 순간을 다시 살게 된다면, 과연 완벽한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뭔가 영화 <나비효과>처럼 주인공 팀의 시간여행으로 인해 상황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줄거리 구도다. 그렇다면 남은 한 시간의 장르는 미스터리나 스릴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바웃 타임>은 장르는 가족 영화다.
사실 <어바웃 타임>은 타임슬립 영화치고는 이야기 구조가 다소 허술하다. 시간 여행을 다룬 타임슬립 영화는 조금만 앞뒤가 틀어져도 소위 말해 ‘말도 안 되는 영화’가 되고 만다. 시간 여행으로 인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황이 변화할 수 있는 영화 속 현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경우 관객들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저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되는 데 주인공은 왜 저럴까?’라는 의구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어바웃 타임>의 시간 여행 역시 어느 정도의 허점을 갖고 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 영화가 시간 여행보다는 가족의 사랑에 더 중점을 둔 영화이며, 시간의 소중함은 주어진 바로 현재 이 시간에 있으므로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잘못을 뒤바꿀 수 있는 시간 여행 따윈 필요 없다는 게 주제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바웃 타임> 역시 이런 부분에서의 허점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후반부 들어 이런 허점을 극복한 중요한 원칙이 하나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이니 언급을 삼간다. 다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인류의 역사를 뒤바꾸고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니 이를 조심하라는 등의 거대한 원칙은 아니다. 가족 영화인만큼 가족사와 관련된 사안으로 이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잊고 살기 쉬운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2세가 탄생하는 등 가족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다시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드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2세 탄생의 기쁨과 부모님 죽음의 슬픔이 반드시 연결돼 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상반된 감정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다. 아무리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어 마음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런 중요한 가족사의 흐름까지 뒤바꿀 순 없다.
이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노팅힐>의 각본을 썼으며 <러브 액츄얼리>를 연출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영국 영화다. <노팅힐> 당시와 같이 영국 런던의 노팅힐 지역이 주요 배경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전문 영역인 로맨틱 코미디에 가족 영화의 감동을 더해 <어바웃 타임>이라는 또 하나의 좋은 영화를 완성했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에서 위즐리 가의 장남으로 늑대인간의 공격을 받아 얼굴에 흉터가 있지만 매력적인 남성으로 등장했던 빌 위즐리 역할을 맡았던 돔놀 글리슨이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초반부에선 그의 설명처럼 모태솔로에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던 돔놀 글리슨은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적인 면모를 선사한다.
<노트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뒤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시간여행자의 아내> <미드나잇 인 파리> 등의 영화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선보인 레이첼 맥아담스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번에도 시간 여행을 하는 팀의 아내이니 벌써 영화에서 두 번이나 시간여행자의 아내 역할을 맡은 셈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