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청와대를 찾는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PA/연합뉴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선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교황의 방문을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만이 방한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009년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에게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교황의 방문이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사될 경우 그 어떤 유력 인사들보다 파급 효과가 클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방한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을 접견한 자리에서 “교황께서 상당히 바쁘신 일정을 갖고 계신 줄 잘 알고 있지만 꼭 방한해 주셨으면 한다”면서 “천주교인들은 물론이고 모든 종교인들이 교황을 뵙기를 원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갈등 치유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필로니 추기경은 “교황은 한국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에도 교황의 방문을 원한다는 뜻을 교황청에 전했다. 지난해 3월 19일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미사에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경축사절단을 파견, 친서를 보내 양국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교황의 방문을 부탁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31일 재임 첫 부활주일 설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 위기 상황의 외교적 해결을 호소했는데,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공식적인 초청과는 별도로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1월경부터 은밀히 교황청과 접촉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분이 있는 한 종교계 인사가 정부의 ‘밀명’을 받고 특사 자격으로 바티칸을 직접 찾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교황의 방문을) 재차 꺼낸 이후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맞다. 다만, 정부가 드러내놓고 나설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라인을 통하고 있다”면서 “마침 올해 국내에서 천주교 관련 큰 이벤트들이 있어 교황청 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안다. 8~10월 사이가 유력하다”고 귀띔했다.
여권 핵심부가 집권 2년차를 앞두고 교황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무엇보다 그 방문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이 다른 분야보다 외교에서 실적을 더욱 내고 싶어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교황 방문과 관련해 현재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교황이 청와대를 찾는다면 박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가로서도 큰 자랑 아니겠느냐.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교황을 향해 끊임없이 방문을 요청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하나같이 “교황의 방문이 성사되면 대한민국 브랜드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페르난도 필로니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박 대통령으로선 선거에서 패한다면 향후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올해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민생과 외교에 중점을 둘 것이란 예측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는 박 대통령이 교황을 만난다면 선거 이슈에서 부담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세대·이념·지역 간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야권에선 여권의 교황 방문 추진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자칫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사실 이명박 정부 때도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방한을 비선에서 추진한 적이 있었다(<일요신문> 954호 보도).
2010년 8월 초 전남 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가 정부 특사 자격으로 베네딕토 16세를 직접 만나 방문을 요청했던 것이다. 끝내 성사되진 않았지만 당시 야권에선 이 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을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천주교계의 여론을 돌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이번에도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 내에서 진보적 성향을 띠는 정의구현사제단은 2012년 권력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앞장서서 성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박창신 신부가 미사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거론해 큰 파문이 일었고, 지난 1월 6일 수원교구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선 박 대통령을 ‘박근혜 씨’라고 부르며 현 정부를 규탄했다. 종교계의 박 대통령 비토 기류를 천주교계의 정의구현사제단이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황의 방문 논의를 무조건 반길 수만은 없다는 지적인 셈이다.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물론 교황의 방문은 천주교뿐 아니라 국가적 경사임엔 분명하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문제”라며 “이것은 교황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순수하게 종교적으로 접근한다면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