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흔히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다카르랠리 2014년 대회가 지난 5일(현지시간) 남미에서 막을 올렸다. 이번 대회는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해 볼리비아와 칠레를 거치는 약 9000㎞ 코스에서 18일까지 펼쳐진다. ‘문명의 때가 타지 않은 오지를 달린다’는 모토답게 주행코스는 사막과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나든다. 바이크·4륜 바이크·자동차·트럭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열리는데, 이 가운데 가장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부문은 바로 자동차 경주다. 각국의 레이서들이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SUV(Sport Utility Vehicle·스포츠형 다목적 차량)들을 몰고 가혹한 환경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
우승컵을 거머쥘 레이서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우승 차’. 지구촌 ‘최강의 자동차’ 자리를 놓고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들의 자존심 대결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자동차 부문에선 모두 155개 팀이 참가신청을 하고, 이 가운데 147개 팀이 실제 출사표를 던졌다. 역대 대회를 보면 완주 비율이 50%에 못 미칠 정도로 난코스가 많아 누구도 쉽사리 우승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1979년 처음 시작된 다카르랠리는 원래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을 관통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까지 이어지는 혹독한 주행코스로 유명했다. 하지만 2008년 아프리카 대륙의 불안한 정세로 테러위협이 제기되자 대회를 보류했고, 이후 남미로 무대를 옮겨 대회를 치르고 있다.
지난 십수 년간 다카르랠리의 강자로 군림한 자동차 브랜드는 모두 3곳이다. 2000년대 초중반은 일본 미쓰비시의 SUV 파제로(Pajero)의 독무대였다. 2001년 독일 출신 여성 레이서인 유타 클라인슈미트가 파제로를 몰고 우승을 차지한 이후, 마쓰오카 히로시(일본), 스테판 피터한셀(프랑스) 등 세계의 유명 레이서들이 파제로의 핸들을 잡고 무려 7년 연속 패권을 거머쥐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카르랠리의 ‘전설’ 스테판 피터한셀 팀은 올해도 미니의 SUV를 선택, 3연승을 노린다.
남미에서 치러진 2009년 대회부터는 판도가 달라졌다. 이 대회에서 기니엘 드 빌리에르(남아공)가 폴크스바겐의 디젤 SUV 투아렉(Touareg)을 몰고 우승을 차지했고, 준우승 팀 역시 투아렉으로 호성적을 기록해 미쓰비시의 연승 행진을 완벽하게 저지했다. 다카르랠리 역사상 디젤 자동차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투아렉은 폴크스바겐의 직분사 기술이 집약된 TDI 엔진을 장착해 280마력의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후 2011년까지 폴크스바겐의 투아렉은 다카르랠리에서 3년 연속 ‘우승 자동차’로 등극하며 명성을 드높였다.
2012년과 2013년의 주인공은 독일 BMW가 흡수한 영국 브랜드 미니(Mini)였다. 2012년 대회에선 우승팀(스테판 피터한셀)과 준우승팀이 모두 미니 최초의 SUV 모델인 컨트리맨(Countryman)을 타고 랠리를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스테판 피터한셀이 역시 컨트리맨 ALL4 레이싱 차량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어 ‘미니 시대’를 이어갔다. 과거에도 미쓰비시의 파제로 등을 몰고 우승을 기록했던 피터한셀은 이로써 다카르랠리 자동차 부문에서 통산 5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올해로 49세인 피터한셀은 모터바이크 부문에서도 모두 6번의 우승기록을 지닌 다카르랠리의 신화적 레이서다.
미쓰비시는 2000년대 초중반 독무대를 펼쳤다.
그렇다면 이번 2014년 대회의 양상은 어떨까. 과연 미니가 3연패를 이룰까, 아니면 왕년의 강자인 미쓰비시와 폴크스바겐이 반격에 성공할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새해의 태양처럼 또 다른 명차 브랜드가 빛나게 될까. 자동차 부문에 출전한 팀들이 ‘선택’한 SUV 브랜드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대회 참가신청을 한 155개 팀 가운데 11개 팀이 최근 2년 연속 우승 자동차로 등극한 미니의 SUV를 애마로 택했다. 이 가운데엔 피터한셀의 팀도 포함돼 있다. 그런가 하면 5개 팀이 파제로를 비롯해 ASX 등 미쓰비시 차량에 오르고, 3개 팀이 폴크스바겐 차량의 운전대에 앉는다. 이들 ‘3강 브랜드’를 제외하고 가장 눈길을 끄는 브랜드는 다름 아닌 도요타다. 무려 40여 개 팀이 도요타의 차량을 몰고 랠리에 도전한다. 가장 많은 차량이 출전하는 만큼 이번에는 도요타가 호성적을 거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 펼쳐지는 다카르랠리는 레이서의 능력, 코드라이버(운전자 옆 좌석에서 차량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와의 호흡, 운전차량의 성능 등 삼박자에 ‘운’까지 더해져야 우승이 가능한 경주로 꼽힌다. 다카르랠리에서 ‘우승 후보’ 브랜드를 꼽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