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곰 장군이가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마치 술래놀이를 하는 듯하다. | ||
그러나 민가 주변까지 내려와 벌꿀을 훔치는 등 사고도 적지 않아 관리팀의 애를 먹이고 있다. 공원 관리소측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먹이가 부족한 3~4월이 되면 으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2일 오전 8시 반달곰 관리팀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전파 발신기를 통해 위치를 추적해본 결과 장군이가 또다시 민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군이의 서식지를 바탕으로 이동거리를 계산해보니 산등성이 하나는 족히 넘은 듯 보였다.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 장군이는 10m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대원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산을 저지하는 관리팀 대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나무위로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한 대원은 취재진에게 “운이 좋았다”고 귀띔한다. 지금까지 장군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무를 타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일이라 앞으로의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장군이의 모습은 언뜻 봐도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지리산 반달곰 관리팀 한상훈 팀장(43)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조사 당시 31kg이었던 몸무게가 58kg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몸통 길이도 136cm로 이제는 제법 성인티가 난다.
장군이가 나무에 오르는 것은 일종의 항의 표시. 한 팀장에 따르면 곰이 나무를 타는 것은 휴식을 취하거나 먹이를 구할 때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을 많이 탄 장군이의 경우 먹이가 부족한 것을 알리기 위한 시위 차원에서 나무에 오른다.
▲ 겨드랑이 부근에 상처를 입은 방사곰을 관리팀 대원들이 보살피고 있다. | ||
양봉장을 운영하는 주민 강판호씨(72)는 “양봉장 주변의 대나무숲을 어슬렁거리다 쏜살같이 벌꿀통을 훔쳐 달아난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맞닥뜨릴 때가 있다”며 싫지 않은 불평을 털어놓는다.
사정이 이렇자 관리팀은 ‘사고뭉치’ 장군이를 감시하기 위해 24시간 경계를 펴고 있다. 산을 내려오는 기미가 보이면 즉각 출동해 특수제작된 고춧가루탄으로 장군이를 쫓아보낸다. 그러나 효과는 그때뿐이다. 독한 가스를 맞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벌꿀통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얼마전에는 무속인들이 놓아둔 제사음식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두꺼운 합판으로 봉합된 입구를 떼어내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물론 장군이가 손상시킨 물건은 보상이 가능하다. 장군이 앞으로 보험이 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팀장은 “장군이와 반돌이 앞으로 5천만원 상당의 피해보험이 가입돼 있다”며 “장군이가 훔쳐간 벌꿀은 조만간 보험사 실사를 통해 적절한 보상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팀장은 오히려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장군이가 사고를 자주 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팀장의 희한한(?) 이론은 이렇다. 한 팀장에 따르면 조만간 몇 마리의 곰을 추가로 방사할 예정이다. 이미 환경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연구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 때문에 장군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곰들의 ‘행동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산적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야생에서 무난하게 적응하고 있는 반돌이와 달리 등산객과 자주 맞닥뜨리는 장군이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한 팀장은 장군이의 어렸을 적 환경을 원인으로 분석한다. 장군이의 경우 사람의 손을 더 탔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음식이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해프닝 한토막. 얼마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온 장군이가 산나물을 캐던 동네 아낙과 마주친 적이 있다. 당시 장군이를 본 주민은 장군이가 쫓아오는 것으로 생각해 혼비백산 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놀란 것은 오히려 장군이라는 게 관리팀의 설명이다.
한 팀장에 따르면 등산객의 숫자가 늘어나는 5~6월이 되면 비슷한 사례가 더 자주 연출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팀장은 “한해 평균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3백만명을 오르내린다”며 “이같은 환경은 결과적으로 야생에 적응해가는 곰들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장군이의 경우 지난 2월까지도 동면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날이 풀리면서 등산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한 팀장은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향후 성공의 키워드라고 말한다.
이석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