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후보에 거론되는 7선 정몽준 의원도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새누리당은 수도권 지역에서 극심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오른쪽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사진공동취재단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대구시장 후보 ‘접수창구’에 가장 긴 줄이 들어서 있다. 벌써 후보군만 10명이 넘는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잠재적 여권 후보군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19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던 주성영 전 의원이 나섰고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던 배영식 전 의원도 가세했다. 권영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빠지지 않았다. 조원진 의원은 곧 출판기념회를 열고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여기에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 윤순영 중구청장, 이진훈 수성구청장 등 대구지역 기초단체장들과 이인선 경북도 정무부지사, 노동일 전 경북대 총장,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도 거론된다. 이 말고도 자천타천 후보는 더 된다. 대구지역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말을 전했다.
“단물만 빨겠다는 새누리당 후보들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일고 있다.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구시장에 출마할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와 더 대조된다. 안방에서 뛰쳐나와 적지에 뛰어든 김 전 최고위원과 남들은 전쟁을 치르는데 벙커에 숨어 먹을 것만 찾으려는 여권 인사들이 너무 다른 행보 아니냐. 인물론으로 가면 새누리당 후보들이 자격 미달이다. 민주당에서 최고위원 출신이 나섰으니 새누리당도 그만한 체급의 선수를 내야 한다. 아니면 진짜 민심이 등 돌릴 수도 있다.”
“일단 공천을 받으려는 의원들은 바른 소리, 쓴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밉보여선 안 되는 까닭이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 해양수산부 부산 설치 파기 등에 대해 입바른 소리 한 자가 누가 있나. 중앙언론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의원들이 사라진 지 벌써 오래다. 부산이 아무리 새누리당 정서가 강할지 몰라도 이번에는 모른다. 안철수 신당도 있고….”
거기에다 모두 정치자금 모금에 나서고 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서다. 주성영 전 의원은 지난해 이미 했고, 조원진 의원은 책을 쓰고 있다.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도 <변화>라는 책을 냈다. 부산에선 서병수 의원이 자서전 <일하는 사람이 미래를 만든다>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권철현 전 대사와 박민식 의원은 출판기념회를 준비 중이다. 이를 두고 “일단 두둑한 선거자금부터 챙기고 보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한 정치권 인사는 “시장 출마 이야기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서 눈도장을 찍겠느냐. 정말 사라져야 할 모금 문화”라고 비꼬았다.
이런 영남권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서울과 경기는 휑하다. 서울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여권 인사는 원외의 이혜훈 최고위원뿐이다. 당내 최다선인 정몽준 의원(7선)이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고위 당직자들도 공사석에서 출마를 요청했지만 정 의원은 불출마에 쐐기를 박은 상태다. 새누리당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이 “정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로 징발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불쾌감을 표할 뿐이다.
서울은 유력 후보 김황식 전 총리(왼쪽)가 최근 미국으로 떠났고 경기는 김문수 지사가 3선 도전을 포기했다. 일요신문 DB
새누리당의 망신살이 가장 뻗친 대목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3선 재도전 포기에 있다. 정병국 의원 등이 나선다지만 당은 김 지사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다. 제발 3선에 도전하라는 애걸복걸이다.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는 한 기관 관계자가 전한 말을 들어보자.
“김 지사 말고는 경기지사 후보로 승부를 걸 만한 사람이 없다는 조사가 많다. 그런데 김 지사가 불출마하면 3선에 도전하는 단체장들에게도 여파가 있다. 아름답게 퇴장하지 않고 3선에 대한 노욕을 보이는 게 당장 부끄러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 물론 여권에서는 단체장 물갈이를 통해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이길 때 성립하는 전략이지 대구·경북 말고는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서울 등 수도권에서 후보자가 숨어 있는 것은 기초 의원·단체장 공천권 폐지 문제와 관련돼 있다. 대선 공약 파기·철회로 회자하면서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 여론이 크게 일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천권 폐지 철회에 대해 반대여론이 훨씬 많았다. 이런 분위기로는 단체장 도전이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한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이 훨씬 많아 서울시장에 당선되더라도 행정이 쉽지만은 않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의 관전평은 이랬다.
“도대체 당이 지금까지 뭘 한 것이냐.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서울시장, 경기지사에 나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 아니냐. 그것도 집권 여당이. 인재 영입에 실패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새누리당은 쥐구멍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계개편까지 갈 수도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