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빙상연맹이 끊임없이 추문에 시달리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들이 지난 15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박은숙 기자
A 코치의 갑작스런 퇴촌은 과거 여제자를 성추행한 의혹이 뒤늦게 제기된 뒤 나온 후속 조치였다. A 코치는 한국체대 쇼트트랙 코치를 맡고 있던 지난 2012년, 자신이 지도하던 여자선수를 본인의 천호동 오피스텔로 유인해 성추행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화장실로 자리를 피한 여자선수가 부모를 불러 더 큰 화를 모면했으나 성폭행까지 당할 수 있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당시 A 코치의 성추행 소문은 빙상계에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A 코치는 일주일간 잠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A 코치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코치직을 이어갔다. 심지어 A 코치의 스승인 한국체대 B 교수는 추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데다 오히려 여자선수의 입을 막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B 교수가 빙상연맹 고위임원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빙상연맹은 문제의 A 코치를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여자대표팀 코치로 발탁해 버젓이 여자선수들을 지도하도록 내버려뒀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빙상연맹은 “코치 선발 과정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라며 궁색한 변명만 내놓았다. 뒤늦게 A 코치의 직무를 정지시킨 빙상연맹은 “추후 상벌위원회를 열어 관련자들의 진상조사와 책임을 묻겠다”고 뒷수습에 나서며 대책 마련에 들어간 상태다.
빙상연맹의 추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에는 쇼트트랙 대표팀 상비군 코치가 여제자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파벌싸움의 희생양이 된 ‘안현수 사태’와 ‘짬짜미 사태’, 모 임원의 학부모 성희롱 등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복된 빙상계의 부패 문제는 빙상연맹 집행부로 쏠린다. 먼저 나서 칼로 도려내야 할 빙상연맹이 제 식구 감싸기로 눈과 귀를 닫았다. 특히 특정인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어 전횡이 난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빙상연맹 고위임원 B 씨다. 이 고위임원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휘두르는 전횡은 이미 빙상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보다 못한 빙상계 원로들이 규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빙상연맹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선 원로들은 공식 기자회견과 탄원서를 제출했다. 장명희 아시아 빙상경기연맹(ASU) 회장 등 빙상계 원로들은 지난 14일 “연맹 집행부에 특정 인물이 제왕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자신의 눈 밖에 나면 불이익을 준다. 지금 상황에서는 상벌위원회를 열어도 진상 규명은 힘들 것”이라며 성토한 뒤 “메달만큼 중요한 게 도덕성인데 빙상 선배로서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빙상연맹은 공식홈페이지에 자유게시판을 삭제해 운영하지 않고 있다. ‘짬짜미 파문’이 터진 2011년 이후부터다. 빙상연맹의 감추고 숨기는 소통 부재의 단적인 사례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학부모 입장에서 빙상연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안 씨는 “연맹에서는 B 임원의 말이면 문제가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승인이 된다는 것이 문제”라며 “이번 성추행 파문 코치의 퇴촌도 배후에는 막강한 힘을 가진 B 임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문제점들이 계속 발생할 수가 있다. 꼬리만 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계속 이런 문제들은 발생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올림픽을 앞두고 빙상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빙상연맹의 해결 노력 의지나 변화 조짐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올림픽 이슈로 비난 여론을 덮으려는 의도만 엿보이고 있다. 빙상연맹은 지난 12일 상벌위원회를 열었으나 성과 없이 형식적으로 마쳤고 이후 재논의 일정도 잡지 않아 ‘버티기’ 논란까지 얹어졌다. 지난 15일 빙상연맹 주관으로 열린 빙상대표선수단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쇼트트랙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일련의 추문과 관련된 질문에서는 입을 맞춘 듯 즉답을 피했다. 빙상연맹의 한 고위관계자는 취재진을 향해 “오늘 같은 자리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선수들에게 용기를 주셔야 한다”라고 귀띔하며 대표팀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려는 의도까지 내보였다.
빙상연맹은 납득하기 힘든 행정 구조를 갖고 있다.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행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 모든 행정은 전명규 부회장을 비롯해 이사들이 맡고 있다. 모두 B 고위임원의 최측근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재열 회장은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장을 맡았다. 빙상연맹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시퍼렇게 멍들고 있는 데도 대표선수단 전체를 통솔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번 대회 선수단장에 선임된 뒤 “명예롭게 생각하고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선수들이 훈련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에게 묻고 싶다. 빙상연맹은 “안녕들 하십니까?”
전우근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