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 상황에서도 인간성은 살아 있다. 이런 미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치열한 전쟁 도중 고립된 공간에서 대치한 군인들이 처음엔 대립하다가 이내 화해한다는 설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런 사례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고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러 편 제작됐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웰컴 투 동막골>과 <공동경비구역 JSA> 등이다.
그리고 2012년에 제작된 노르웨이 영화 <인 투 더 화이트(Into the White)> 역시 이런 류의 영화다. 러닝타임은 100분. <인 투 더 화이트>는 한국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유사점이 많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남한군과 북한군, 그리고 미국군이 깊은 산 속 마을 동막골에서 만났던 것처럼 <인 투 더 화이트>에선 노르웨이의 깊은 산 속 한 오두막집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이 조우했다. 영화의 규모는 훨씬 작다. 동막골 주민들이 대거 출연한 <웰컴 투 동막골>과 달리 <인 투 더 화이트>는 텅 빈 오두막집에서 만난 독일군 3명과 영국군 2명이 출연진의 전부다.
사실 영화 자체는 자칫 지루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 영화인 터라 독일군과 영국군이 서로 대립하다 결국 화해하고 서로 우정을 쌓게 된다는 스토리의 흐름을 누구나 손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연 인원이 5명으로 한정돼 있으며 공간도 오두막이 대부분이라 볼거리도 많지 않다. 다만 노르웨이의 설경과 밤하늘의 오로라 등이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오히려 스토리를 풀어가는 부분에선 <웰컴 투 동막골> 등 한국 영화보다 세련되지 못한 편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에서 연극 연출가로 유명세를 얻은 뒤 영화감독이 된 페테르 내스의 성향 탓에 영화는 연극적인 요소도 많이 엿보인다는 부분 역시 영화를 조금은 지루하게 만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볼거리 가운데 하나는 영화가 끝난 뒤 자막으로 소개되는 그 이후 이야기다. 오두막에서 대치한 다섯 명 군인 가운데 누군가는 이후 전쟁에서 사망하고 또 누군가는 포로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내게 된다.
그리고 무려 37년이 흐른 뒤인 1977년 오두막에서 함께 있었던 독일군 한 명과 영국군 한 명이 재회한다. 당연히 이제는 적이 아닌 친구로서의 재회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과 영국을 쉽게 오갈 수 있게 된 뒤에도 무려 37년이 지난 뒤에야 이들은 다시 만난다. 아마도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이들이 37년 만에 적이 아닌 친구로 다시 만난 그들의 우정이야말로 그 어떤 역사가가 정의한 2차 세계대전의 정당성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 줄거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배경은 1940년 4월 노르웨이 그로틀리다. 우선 그로틀리라는 지역에 대해 알아보자. 요즘은 그로틀리 지역의 스노 로드(snow road)라 불리는 길이 유명 관광지가 됐는데 국내 패키지 북유럽 관광에서도 빠지지 않는 명소다. 해박 1300m가 넘는 지역으로 만년설이 유명하다. 스노 로드(snow road)가 6월 1일부터 10월 중순까지만 개방되는 것으로 볼 때 그곳의 4월은 눈으로 덮여 인적이 끊인 혹한의 날씨임을 알 수 있다.
1940년 4월 노르웨이를 두고 영국과 독일이 한창 대치중이었다. 그 이유는 노르웨이로부터의 철광석 수송 지배권 획득이었다. 이를 두고 한창 양국 공군의 공중던이 이어지고 있었고 4월 17일 두 대의 비행기가 그로틀리 지역에 추락한다. 영국과 독일의 전투기였는데 서로가 서로를 격추시킨 것이었다. 독일군 비행기에는 호르스트 쇼피스 중위(플로리안 루카스 분), 볼프강 스트룬크 상사(스티그 헨릭 호프 분), 요제프 슈바르츠 상병(데이빗 크로스 분)등 세 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영국군 비행기에는 찰스 데븐포트 대위(라클랜 니보어 분)과 로버트 스미스 기총사수(루퍼트 그린트 분)가 탑승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격추된 이후 혹한의 눈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먼저 독일군 일행이 오두막을 찾아냈고 얼마 후 영국군들도 오두막에 도착한다. 강추위와 눈으로 인해 오두막이 유일한 생존 공간인 터라 양국 군인은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처음에는 무기를 갖고 있던 독일군이 주도권을 갖고 영국군을 포로로 삼아 지내지만 영국군 스미스가 총을 손에 넣으면서 상황이 바뀌어 영국군이 독일군을 포로로 삼게 된다. 그렇지만 이내 양국 군인들은 서로의 무기를 공동 보관하며 동등한 입장으로 오두막에서 지내게 된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총칼을 겨눈 채 서로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적이던 이들이 서로의 총을 내려놓고 혹한과 폭설, 그리고 이로 인한 굶주림 등 대자연 앞에서 동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쉽지 않은 과정이 영화 <인 투 더 화이트>가 그리고자 하는 전쟁의 실상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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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 투 더 하우스>는 아무래도 남성 관객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다소 지루하게 진행되지만 남성 관객의 마음 속 어딘가를 조용히 울리게 하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다. 전쟁 상황에서도 매너와 배려를 잃지 않는 독일과 영국의 장교들의 모습부터 전쟁의 공포로 힘겨워 하는 병사의 모습, 그리고 국적은 물론 성격이나 성향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극한 대치의 상황 속에서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실화이며 그들이 37년 뒤 다시 만났다는 영화가 끝난 뒤 나오는 자막도 매력적이다. 총을 든 남성들의 액션을 그린 영화도 좋지만 서로 총을 내려놓고 우정을 쌓는 게 불가능한, 아니 금지당한 상황에서도 우정을 쌓는 이들의 모습은 분명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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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규모가 작은 영화다. TV 방영용 영화로 제작된 터라 주요 출연진도 5명이 전부이며 촬영 장소도 오두막으로 한정돼 있다. 연극적인 요소도 강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영화의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슴을 울리는 찡한 감동이 들어있지만 거기까지 다가가기엔 껍질이 너무 단단하다고 해야 할까.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