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까지 백악관의 주인은 철저히 백인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전에도 백악관이 삶의 터전인 흑인들이 있었다. 바로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담당하는 버틀러들이다. 버틀러(butler)는 집사를 의미하는데 대저택에서 일하는 남자 하인 중 책임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4년 동안 무려 8명의 대통령을 수행한 버틀러, 세실 게인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당시 미국 사회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 때문에 시름에 잠겨 있었다. 흑인들은 이 기간 동안 버스와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의 백인과의 차별이 철폐되고 투표권을 얻는 등 눈부신 인권 신장 성과를 거둔다. 그렇지만 이처럼 중대한 인종차별 타파 법안이 논의되던 백악관에서는 꾸준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계속됐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사라진 80년대 초반까지도 버틀러 등 백악관에서 일하는 흑인들은 같은 일을 하는 백인보다 훨씬 적은 보수를 받았으며 능력이 입증돼도 승진이 불가능했다.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는 그 이유를 백악관에서 일하는 버틀러 등 흑인들이 직업의 특성상 흑인에 대한 차별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묘사한다. 백인인 대통령을 수행하는 버틀러는 늘 있어도 없는 듯 존재하며 개인적인 의견을 대통령에게 말해서도 안 되는, 조선시대의 내시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결국 백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직업인 버틀러들은 흑인에 대한 차별을 현실로 받아들인 터라 가장 늦게까지 인권 회복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백악관에서 일한 버틀러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독은 주인공인 버틀러 세실 게인즈와 흑인 인권 운동가인 그의 아들 루이스 게인즈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당시의 흑인 인권 운동을 그리고 있다. 세실이 흑인에 대한 차별을 개인의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능력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온건파라면, 루이스는 각종 시위에 참가하고 직접 정치 일선에 뛰어 들어 인종차별 문제를 극복하려 한 급진파다. 영화에서 이들이 거듭 충돌하는 부자관계로 나오지만 감독이 실질적으로 그리려 한 부분은 바로 흑인 인권문제에 대한 온건파와 급진파의 충돌로 풀이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2009년 버락 오바마가 제44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한 즈음이다. 세실이 버틀러의 일을 그만두고 백악관을 떠난 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흑인은 식당과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합석이 불가능했던 암울한 시기에 백악관 버틀러가 된 세실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공식 초대를 받아 백악관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세실과 그의 아들 루이스의 이야기만으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사를 모두 정리할 순 없지만 상징적으로나마 그 과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는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에는 로빈 윌리엄스, 알란 릭맨, 존 쿠삭, 제인 폰다 등이 카메오로 출연해 아이젠하워, 레이던, 닉슨 대통령과 영부인 낸시 레이건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오프라 윈프리가 세실의 부인 글로리아 게인즈 역할을 맡아 빼어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에선 2013년 11월에 개봉했으며 러닝타임은 132분이다. 영어 제목은 <Lee Daniels' The Butler>이며 연출은 리 다니엘스 감독이 맡았다.
@ 줄거리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 분)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흑인에 대한 차별에서 시작된다. 목화 농장에서 일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세실은 당연히 목화밭에서 평생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백인 남자 주인에게 어머니는 강간당하고 이에 항의하던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을 겪으면서 세실의 인생은 변화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백인 여자 주인은 그를 목화밭 일꾼이 아닌 집 안에서 일하는 하인 업무를 맡긴 것. 그렇게 세실은 ‘검둥이 하인’이 된다.
성인이 돼 고향을 떠난 세실은 워싱턴 소재의 한 호텔에서 일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하인 업무가 몸에 배어 있던 세실은 좋은 윗사람을 만나 백인 손님을 성실하고 진실된 자세로 응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백악관 관료의 눈에 띄어 백악관 버틀러로 스카우트 된다.
당시 흑인으로서는 선망의 직업을 갖게 된 세실은 열심히 일하며 아내와 두 아들을 키운다. 그렇지만 큰아들 루이스(데이빗 오예로워 분)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인권 운동의 길에 나선다. 루이스는 시위에 참가하면서 감옥에 드나드는 일이 많아지고 위험한 테러까지 당하면서 아버지 세실과 사이가 점점 멀어져간다.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4년 동안 세실이 버틀러로 일하는 동안 미국 사회는 흑인 인권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흑인들에 대한 인권차별이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다. 물론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세실과 루이스 부자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사회적 대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이젠하워, 케네디, 닉슨, 레이건 등 8명의 대통령을 수행하며 이런 변화를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세실과 목숨을 걸고 인권운동에 나선 아들 루이스는 모두 자기 방식대로 그 변화의 시대를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각각의 방식으로 성과를 일궈내고 또 아름다운 화해로 이어진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진지한 휴먼드라마를 좋아한다면 클릭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는 전형적인 휴먼드라마다. 아무래도 타이틀롤인 버틀러 역할의 세실 게인즈의 삶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흑인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어린 시절부터 흑인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노년기까지 세실의 일대기를 통해 영화는 미국의 흑인 인권 문제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세실 개인의 일대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이지만 여기에 흑인 인권 문제라는 사회적인 문제와 역대 대통령들의 백악관 일상을 더하면서 훨씬 풍성해졌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아들 루이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영화가 너무 세실 한 명에게 치우치지 않도록 설정한 부분 역시 영화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줬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3000원
132분으로 비교적 긴 러닝타임의 영화임에도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비슷한 톤으로 이어진다. 감정이 응축되는 클라이맥스나 스토리의 전개상 결정적인 대목 등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지루하다거나 너무 길다는 틈을 주지 않고 영화는 진행된다. 그만큼 잔잔하지만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영화다. 추천 다운로드 가격 역시 이런 무난한 영화라는 점을 토대로 3000원으로 정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