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천시장 출마에 대해 다시 한번 거부의사를 밝혔다.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선 “과분한 자리”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당원으로서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
—정몽준 의원, 김황식 전 총리 등을 염두에 둔 서울시장 후보 특별 추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으면 오픈프라이머리까지 해서 국민후보를 모시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 모든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당의 주요 선출직 후보를 정할 때도 국민으로부터 나왔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공천권까지도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원칙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시장은 ‘소통령’이라 불리지 않나. 중진급이 차출돼 서울을 ‘되찾아야 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가급적 원내는 원내에 충실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함부로 차출하는 게 아니다. 뽑아준 지역주민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나. (특별추대론에 대해서는) 당규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이혜훈 최고위원을 봐라.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얼마나 멋지나. 그런 사람은 도외시하고 마치 다 된 것처럼 후보를 거론하는 건 적절치 못한 것 같다.”
—차기 국회의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의장은 의회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곳이다. 나에겐 과분한 자리다. 게다가 아직 대표 임기 중이다.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다. 하는 데까지 당에 충실하겠다.”
차기 국회의장으로 지목되는 5선의 황 대표가 인천시장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당내 일부 의견이 있었다. 황 대표는 그때마다 ‘그럴 일이 없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그 사이 혹여 마음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러나 황 대표는 여전히 미소를 띠며 “거대 당에 인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당내에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다”며 인천시장 후보로 나설 생각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인천 출신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인천시장 후보로는 누가 적합하다고 보나.
“윤상현 이학재 안상수 등 거론되는 후보들이 많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를 눈 여겨 보고 있다. 인천이어서 그가 보여 온 노력과 땀은 당의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안철수 신당’ 창당 과정이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한 개인에 기댄 정치적 현상이 대선 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우리가 잘못하면 국민은 배를 갈아탄다. 제3의 정당, 신당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건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 신당 창당에 대한 관심은 안철수라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기존 정당들이 충분히 제 역할을 했느냐, 못했느냐에 대한 국민의 평점이다. 어떤 정당이 대체됐으면 하는 엄격한 바람도 포함될 수 있겠다. 국민의 시각이 담긴 회오리바람이 분다고 할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사이라도 여야가 정신 차려야 한다.”
—‘안철수 신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 표를 ‘갈라먹기’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호재 아닌가.
“어부지리를 생각하다간 큰일 난다. 독자적인 과반을 넘긴다는 생각을 갖고 정면승부를 걸어야 한다. 섣부른 자기안도는 선거에서 금물이다.”
—여당 대표의 임기가 거의 끝나간다. 대표로서 체득한 신념이 있다면.
“여당은 우선 자기 힘을 좀 빼야 한다. 국민과 행정부, 야당, 그 가운데에서 자기 권한과 힘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를 비롯해 야당도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게 좀 지켜볼 줄도 알고 힘을 자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축구로 말하면 중간에서 공을 나눠주는 미드필더와 같은 역할이다. 특히 최대한 많은 선수들이 게임을 위해 잘 뛸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여당이 제 힘만 믿고 요란하게 공을 치고 나오는 건 적절치 못하다.”
“청와대, 양당 대표가 모인 3자회담을 성사시켰다. 당초 야당에선 단독회담을 원했으나 원내 문제라든지 걸리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결국 여당이 나서 청와대와 야당 사이서 이리저리 조율한 결과 3자회담이 이뤄졌고 사실 그 때 많은 게 해결됐다. 이를테면 당시 박근혜 대통령께서 ‘국정원 개혁도 국회에서 하라’는 통 큰 제안을 하셨지 않았는가. 여당이 쓴소리를 조금 들을 각오를 하더라도 청와대와 야당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때 나랏일이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다.”
—민주당에 아쉬운 점은 없었나.
“아쉬운 게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본다. 일례로 국회에서 재작년 몸싸움 없이 666건을 가결했다. 2013년엔 924건 가결로 40% 이상 껑충 뛰었다. 헌법 가치라는 그릇 안에 여야가 있듯이 좀 더디더라도 싸우지 않고 대화하면서 그렇게 국사가 이뤄지는 거다. 야당도 여당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한다. 야당도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국민도 느끼실 거다.”
2012년 황 대표는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으로 알려진 국회선진화법 통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한 상황이었다. 황 대표는 먼저 당내 소장파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의회에서는 오로지 국민을 위한 대화, 이를 통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일일이 의원들을 만나 끈질긴 설득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선진화법의 입법 후 드러난 효과가 있다면.
“국가비상사태와 같이 긴급한 사안에 여야합의로 직권상정을 허용하는 것 이외에는 되도록 직권상정을 삼가는 방향으로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나. 여야가 서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선 호평받았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이 아직 과도기 단계에 놓여 있다 보니 여당으로선 좀 갑갑하지(웃음). 그러나 국회는 시간이 좀 걸려도 토론을 해야 하는 곳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대한민국 의회에 하나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어당팔’, ‘의회주의자’, 애칭이 무려 두 개나 된다(웃음).
“주변에서 그러시더라. 하는 모양새는 어수룩해 보이는데 당수가 8단이라고 해서 ‘어당팔’이라고 부른다고(웃음). 정치적 내공이 있다는 뜻에서 그런 애칭을 붙여주신 것 같아서 고맙다고 했다. ‘의회주의자’라는 애칭은 솔직한 심정으로 제게 과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박관용, 이만섭, 신익희 전 국회의장님들을 비롯해 의회의 많은 어른들이 계시지 않은가. 그런 분들께 드려야 할 존칭이라 본다.”
—판사 출신이어서 그런가. 원칙을 중요시 하는 것 같다. 판사와 의회의 길을 차례로 걸어오면서 느낀 그 차이점이 있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판사는 국회에서 만든 법에 따라 과거를 비추어보고 결론을 맺어나간다. 의회는 과거보다는 미래의 일을 대비해서 원칙을 세우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주목할 만한 공통점도 있다. 바로 ‘헌법가치의 구현’이 그것이다. 다행히도 판사로서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훈련해 의정 활동에서 좀 더 균형 있는 사고를 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황 대표는 여권에서 유일하게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 박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는 ‘숨은’ 실세로 알려졌다(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는 비공개적으로나 전화 통화로 자주 소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와 그동안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박 대통령은 곁에서 보기에 어떤가.
“즉답을 잘 안하신다. 야당 쪽에서 하는 얘기든 뭐든 상관치 않고 상대가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그걸 심사숙고한 뒤 필요하면 즉시 실천하는 분이다. 국민에게 필요한 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실현하는 모습. 적어도 나는 박 대통령에게 그런 신뢰가 있다.”
2013년 11월 11일 황우여 대표가 새 민주당사를 방문해 100여 일 만에 서울광장 천막당사를 접고 철수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 화분과 떡을 선물했다. 황 대표는 웃고 있지만 대화 분위기는 냉랭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요새는 그 분이 경제에 관심이 많다. 외국에 가면 ‘이거 우리나라에 이렇게 했으면 되는데’ 하시기도 하고 많은 걸 느끼시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창조경제와 관련해 ‘국제적인 많은 나라들이 힘을 합하여 뭘 하면 된다’는 구상이 자주 떠오르시는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일본, 북한과의 주변 외교에 대해선 ‘한번 내뱉은 말, 결심을 하면 꾸준히 상대방이 믿도록 해나가야 한다’며 국가 간 신뢰에 대한 마음이 확고하시다.”
—박 대통령에 대한 다른 시각의 평가는 없나.
“종국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신뢰를 받으실 거다. 굉장히 안정감 있는 분이다.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마라톤을 지켜보듯 국정의 진가가 드러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은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해였다. 외교 안보 등 국가의 틀을 잡고 기초 다지는 데 있어선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지지도만 봐도 평균 이상이지 않은가. 다만 주춧돌을 놓았으니 이젠 집을 지어야 할 차례다. 올해는 경제 활성화와 국민 행복이라는 목표를 갖고 성과를 내야 한다.”
—‘청와대의 입장을 너무 살핀다’, ‘유연하지만 유약해보이는 리더십이다’라는 지적도 있다.
“나는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당원들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다. 물론 당 대표로서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적 의미에서 보면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장이 아닌가. 때문에 대통령과 강경 대립하는 노선보다는 대통령의 의사를 존중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도리가 아닌가 싶다. 설령 그런 행태가 유약함으로 비추어질지라도 결과물들을 보면 국민께서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는 첫째도 국민, 둘째도 국민이다. 참고로 대통령께서도 당 대표가 어떤 제안을 하면 전혀 소홀히 안하신다. 그렇다보니 내가 더 신중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나.
“반값등록금처럼 민주당이 먼저 주장했던 것이지만 집권 여당으로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나. 국민이 원하면 상대의 주장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다. 국정은 여야를 넘나드는 대화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2014년 신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드리는 집권여당 대표의 메시지는.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수준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 대한민국의 발전 동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국민의 힘은 가정에서 나온다. 어려운 일 많으시겠지만 설 명절을 맞아 민족적 재충전을 이루시길 바란다.”
인터뷰 내내 황우여 대표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언제 봐도 웃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칼처럼 예리한 황 대표만의 그 무엇도 숨어 있는 듯 보였다. 그에게 물었다.
“항상 웃는 얼굴이다. 속을 알 수 없어 무섭다. 항상 그렇게 웃는 얼굴로 의원들을 달래가며 의중을 전달하느냐.”
“그런가. 옳은 길은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길 날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옳은 말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황 대표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중하게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9년 전 사별 아내 폰번호 아직 그대로
황우여 대표는 소문난 ‘로맨티스트’다. 친한 선배의 소개로 당시 대학생이던 부인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황 대표는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종종 사석에서 “운명처럼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며 부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황 대표에게 부인은 부부지간을 떠나 정치 파트너였다고 한다. 이른바 ‘거사’가 있을 때마다 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9년 전 부인이 세상을 뜨면서 황 대표는 한 차례 시련을 겪는다. 이후 황 대표는 부인의 휴대폰 번호를 9년간 줄곧 유지해오며 부인을 향한 여전한 그리움을 간직해오고 있다. 황 대표는 사석에서 “부인의 전화번호가 공적으로도 알려져 있고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당시 동석한 이들에 따르면 “황 대표의 눈빛에서 애잔한 사연이 느껴져 분위기가 숙연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기자가 황 대표의 지갑 안을 보니 소문대로 부인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애처가’ 황 대표, 그의 가족사랑은 원래 유명하다. 구십의 노부모를 직접 모시며 틈마다 대화를 나누는 게 삶의 낙이라고 한다. 실제로 황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희 아버지는 90세이시고 어머니는 89세이신데 내가 여전히 그 분들의 말을 잘 듣는다. 부모님이 정치 하지 말라고 하시면 선거에도 출마 못하고 영영 정치판을 떠날 수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황 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부중인 아들 부부가 2년 전에 손녀를 낳고, 그 손녀가 말을 떼기 시작했는데 얼굴도 아직 못 봤다”며 “얼마 전엔 아들이 귀국하겠다고 인사해 왔지만 내가 가면 비행기 값도 절약되니 기다려라 했지만 아직 못 갔다. 할아버지로서 손녀와 사진 한 장 찍지 못해 마음속으로 늘 걸렸다”며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